“학계가 처음부터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겁니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판사 석궁 테러 사실이 보도된 16일 사법부 못 지 않게 충격에 빠진 것은 수학계였다. 학문적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학계의 경직된 풍토가 한 전직 교수를 끔찍한 범죄자로 만든 측면을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판사 테러의 단초는 12년 전 대학입시 수학문제 오류에서 비롯된다. 1995학년도 성균관대 대학별 고사 채점위원이었던 김씨는 15점짜리 서술형 주관식 수학문제에 대해 “문제의 조건 자체에 모순이 있다”며 전원 만점 처리를 주장했다. 하지만 출제위원과 학교 측은 채점을 강행했고, 김씨는 나중에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듬해 김씨는 부교수 승진과 재임용에서 탈락했고, 이를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이라고 여겼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는 김씨의 재임용 탈락이 연구실적 미비와 비정상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양 측의 싸움은 법정으로 비화하게 된다.
그러나 학계는 사태가 커지기 전 적극적으로 개입해 원만하게 풀지 못했다.
김씨는 1995년 10월 법원에 부교수 직위확인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에 의견을 구했다. 두 기관은 답변을 회피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한 교수는 “학교의 인사권을 존중한다 하더라고 입시문제에 대한 수학적 오류에 대해서는 견해를 밝혔어야 했다”고 말했다.
보다 못한 44개 대학 189명의 수학과 교수들이 재판부에 연판장을 제출, 김씨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학회 등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97년 과학저널 <사이언스> 는 ‘옳은 답에 대한 비싼 대가’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 과학계의 대응을 촉구했으나 이 역시 ‘쇠 귀에 경 읽기’였다. 사이언스>
수학회는 사건 다음 날인 16일에야 “이사들과 문제를 논의한 뒤 공식 입장을 결정하겠다”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김희원기자 hee@hk.co.kr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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