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제가 쓴 게 아닌 것 같아요. 로댕이 ‘작가는 자연이 불러주는 예술을 통역하는 자’라는 말을 했는데, 이번처럼 그 말을 실감한 적이 없습니다.”
소설가 최인호(62)씨가 2,500년 유교 역사를 다룬 대하장편소설 <유림(儒林)> (열림원)을 완간했다. 19일 발매되는 제6권 <이기이원론> 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은 <유림> 은 유교의 시조인 공자부터 맹자, 주자, 왕양명, 조광조, 퇴계, 율곡 등 유교의 대사상가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 유교소설. 16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작가는 <유림> 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며 “유교의 완성자로서의 퇴계를 발견하고 황홀경 같은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꼈다”고 했다. 유림> 유림> 이기이원론> 유림(儒林)>
<유림> 은 불교의 흥륭 과정을 다룬 대하소설 <길 없는 길> 을 마무리하면서 마음 속에 품었던 구상이 15년 만에 제 옷을 입고 모습을 드러낸 작품. “개인에게 인격이 있듯 나라에도 국격이라는 게 있습니다. <길 없는 길> 을 쓰면서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는 불교뿐 아니라 유교라는 또 하나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죠. 유교에 대해 쓰지 않고는 우리 민족성을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길> 길> 유림>
처음에 작가는 공자가 예수, 부처와 함께 세계 3대 성인에 속하긴 하지만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축이라고 생각했다. “공자가 벼슬 한 자리 해보려고 상갓집 개처럼 떠돌아 다니고 제자들에게도 멸시당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우리 같은 인간들에겐 공자야말로 살아있는 생의 교범이에요. 내세나 해탈, 신앙을 얘기하지 않고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일관했다는 게 그의 위대함입니다.”
20년 전 가톨릭으로 귀의한 작가는 2~3년 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설을 쓸 계획이다. 유교, 불교, 기독교를 두루 섭렵하는 게 모종의 기획에 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입덧 하듯 자연스럽게 작가적 열정이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나이 60을 넘으니까 작가가 너무 행복한 존재구나 싶어요. 저는 아직도 원고지가 주는 엄숙함이 좋아 만년필로 원고를 쓰는데, 만년필을 원고지에 대는 순간이 꼭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올해로 소설 쓰기 40년째인 그는 앞으로 유부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연애소설을 꼭 한 번 써보고 싶다고 했다. “60대 남자가 사랑에 빠져 엉엉 우는 소설, 그의 아내가 여자를 찾아가 우리 남편과 연애 한 번 해달라고 사정하는 그런 소설을 단문(短文)만으로 한 번 써보고 싶어요. 연애소설은 모든 작가들의 꿈이니까요.”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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