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발생한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석궁 테러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은 16일 "법치국가의 최후 보루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법관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지시사항을 일선 법원에 내려보냈다. "사법부도 잘못된 모습을 되돌아보겠다"고 자기 반성도 했다.
●"법치주의에 대한 테러"
대법원은 15일에 이어 16일에도 비상대책회의를 가졌다. 오전 9시부터 열린 회의에는 20여명의 고위 법관이 참석, 법관 보호 및 사법부 신뢰 회복 대책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이번 사건이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테러 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19일 긴급 전국법원장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법정 소란행위가 예상될 경우 감치(監置) 등을 통해 법정 질서를 엄격하게 유지하고, 법원 주변의 1인 시위자나 악성 민원인 등의 동향을 파악해 관리하도록 각급 법원에 지시했다. 신변에 위험이 예상되는 법관에 대해서는 경찰과 연계해 보호 조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법원 안팎에선 사법부의 신뢰 회복이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변호사는 "법원이 당사자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 데 이번 사건의 원인이 있다"며 "국민들이 판결에 승복할 수 있도록 재판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부도 스스로 돌아볼 점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19일 전국법원장회의에서 근본적인 사태해결을 위한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씨, 석궁 발사 연습까지
박홍우(55)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쏜 김명호(50)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석궁을 구입, 집 거실 벽에 다다미를 걸어 놓고 과녁 삼아 석궁 발사 연습을 해 왔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인터넷에 공개된 고위공직자 재산명세를 통해 박 부장판사의 집 주소를 미리 확인했고 2, 3차례 사전 답사까지 마쳤다.
김씨는 지난해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 버려라'라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이 검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 대법원장을 검찰에 고발한 당사자다. 김씨는 15일 오후 2시로 예정된 검찰 조사 시간을 오전으로 당겨 조사를 받은 뒤 박 부장판사의 집으로 향했다. 범행 당시 김씨는 석궁 및 화살 9발 외에 길이 35㎝의 칼과 노끈도 함께 갖고 있었다.
김씨는 "석궁으로 위협만 하려고 했으나 박 부장판사와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화살이 발사됐으며, 칼은 이사할 때 석궁 가방에 넣었던 것을 모르고 들고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그러나 ▦김씨가 칼과 노끈까지 준비한 데다 ▦박 부장판사의 집을 사전 답사했고 ▦석궁 방아쇠를 힘주어 당기지 않으면 화살이 발사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처음부터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 살인미수 혐의로 김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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