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뛰어난 과학기술의 상징으로 꼽히는 것은 무엇일까? 흔히 세종대왕과 함께 그 시대 사용된 물시계, 해시계 등을 떠올린다. 이러한 통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바로 현재 1만원권 지폐다. 1만원권 앞면에는 세종대왕과 물시계 자격루(국보 229호)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그런데 전통 과학기술의 대표물이 이제 바뀔 것같다.
22일 새로 발행되는 1만원권에는 물시계 대신 조선시대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국보 228호)와, 천문시계인 혼천의(渾天儀·국보 230호)가 등장한다. 국내에서 가장 큰 망원경인 지름 1.8m의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도 그려진다. 이를 기념해 소남(召南)천문학사연구소는 19일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제1회 심포지엄도 연다.
천문도 의미
지폐 그림이 바뀌게 된 데에는 천문학자들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됐다. 도대체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무엇이기에 그럴까?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태조가 1394년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 것을 기념해 그 이듬해 돌에 새겨 만든 천문도다. 중국의 순우천문도(1247년 제작)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 된 천문도로 꼽힌다. 재미난 것은 이 천문도의 원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천문도 밑에 쓰여진 기록은 “고구려 시대에 석각천문도가 제작됐으나 전쟁중 소실됐고 대신 탁본이 있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 천문학자들은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별자리가 1세기경 위도 39~40도에서 관측된 것임이 확인됐다. 가장 오래된 고대의 하늘이 그려진 천문도인 것이다.
더욱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자리 배열이 고구려 고분의 별자리 배열과 일치하고, 고구려고분의 별 그림은 고인돌에 새겨진 별 그림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수천년간 밤하늘을 관측해온 우리 전통의 총아라 할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별은 총 1,467개이고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그려져 있는데 특히 이 밝기는 현대 관측된 등급과 잘 일치한다.
어느 시대의 하늘인가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밤하늘이 언제 관측된 것이냐는 것은 학계에 큰 논란거리였다. 19일 심포지엄에서 이면우 춘천교대 교수가 시기 논쟁을 조명한다.
조선시대에 제작됐지만 이보다 1,000년 더 앞선 밤하늘이라는 사실은 1980년대에 진지하게 논의됐다. 이은성, 박성환 등 일군의 천문학자들이 천문도의 설명문에 나오는 춘·추분점의 위치 또는 춘·추분점 근처의 별자리 일부를 분석해 관측연대를 2세기, 5세기 등으로 추정했다. 20세기 초 선교사 루퍼스도 천상열차분야지도 설명문을 영역, 서구에 소개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폈지만 천문학적 연구가 병행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박창범 고등과학원(당시 서울대) 교수는 관측시기가 1세기경이라고 밝혔는데 지금까지 연구 중 가장 방대하다. 박 교수는 별자리를 일일이 옮겨그리는 방법으로 거리, 밝기 등을 측정해 375개의 별을 확인(동정)하고, 컴퓨터로 이 별자리들이 관측된 밤하늘의 시기를 계산해냈다. 그 결과 천상열차분야지도 가운데 부분의 별자리는 조선 초기 관측자료에 가깝지만 바깥부분의 별자리는 고구려 초기에 관측된 것이었다.
일본에도 영향
심포지엄에서 이용복 서울교대 교수는 고구려의 천문관측전통이 일본에 끼친 영향을 고찰한다. 98년 발견된 나라현 아스카무라 기토라고분(7세기말~8세기초)의 천장에 그려진 별자리그림은 여러 모로 우리 학자들이 관심을 끈다. 먼저 고분의 별자리그림이 북극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고, 28수의 별자리를 그려넣은 점이 고구려의 별자리 배열을 그대로 반영했다.
또 대략적인 관측 위치와 시기가 북위 38~39도, 기원전 3세기~서기3세기 정도인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관측된 별자리일 가능성도 있다. 이 교수는 “기토라 고분의 별자리 그림이 중국의 것보다 고구려의 전통에 가까워 고구려의 별자리 그림이 그대로 일본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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