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지신(移木之信)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기원전 4세기 중국 진(秦)에서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추진한 상앙(商革+央)이란 재상이 남긴 일화가 담겨 있다. 후대 역사가인 사마천은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專)에서 이렇게 전한다. 사기(史記)>
한번은 상앙이 법률을 제정하고도 공포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믿어 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남문에 긴 나무를 세워 놓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 금(十金)을 주리라."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오십 금으로 올렸더니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약속대로 즉시 오십 금을 주었다. 그리고 법령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조정을 믿고 법을 잘 지켰다.
상앙은 중국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법가 계열 이론가다. 사실 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 등 그의 선ㆍ후배 법가 논객들은 법 만능주의에 빠져 강퍅한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냉혹한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흥행만점의 요란한 행사를 벌인 목적은 분명하다. 조정의 지시에 따르면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정책이라도 백성들이 믿고 따르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정성 덕인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변법(變法)개혁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그는 변방국가였던 진이 중국 역사상 최초로 대륙을 통일하는 데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얼마전 발표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실태 종합조사' 결과는 처참하다. 정부 정당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10점 만점에 3점대로 생명부지의 사람보다 낮다. 사회적 자본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윤할유처럼 연결하는 제도 규범 등의 사회적 자산을 뜻한다.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에 이은 제3의 자본으로 21세기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KDI가 사회적 자본을 더 확충하지 못하면 불신 때문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비록 실체는 없지만 대체로 합의된 부분은 있다. 2000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 경영경제학회에서는 신뢰성(trust) 진실성(integrity) 단결성(solidarity) 개방성(openness) 등을 사회적 자본의 4대 구성요소로 꼽았다.
이들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신뢰성과 원칙을 준수하는 진실성이다. 이런 점에서 상앙의 이목지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일종의 사회적 자본을 쌓기 위한 노력이었던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초에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이 논의의 싹조차 키워보지 못한 채 난파 일보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노 대통령이 딱해서가 아니라 멀쩡한 제품까지 망가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사회 양극화 해소, 저출산 타개, 성장과 분배의 동반성장, 국토 균형발전, 비전2030 등 참여정부가 쏟아놓았던 아젠다는 대부분 왜 진작 추진논의가 활성화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번번히 추진동력이 훼손됐고 우리 사회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노 대통령의 빈약한 사회적 자본을 들고 싶다.
벌써부터 대선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진심으로 국민의 신뢰를 부단하게 쌓으려고 애쓰는 후보가 다음 정부를 이끌기를 기대해본다.
김경철 경제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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