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문을 비닐로 빈틈없이 잘 막아야지.”(직원) “네, 조금 어긋났네요.”(사장)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입구 옆에 있는 한 자동차외형복원전문센터. 사장 최병학(52)씨가 오히려 직원에게 한 소리 듣는다. 익숙한 솜씨로 스프레이를 뿌리며 부분도색 솜씨를 뽐낸 직원은 조목조목 외형복원기술을 전수해 줬다.
한때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최 사장에게 올해는 의미가 남다르다.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행복입니다.”
폭풍처럼 들이닥친 IMF 외환위기는 그의 인생을 처절하게 추락시켰다. 일당 5만원을 받고 막노동을 해가며 쪽방 생활을 하던 그는 건설업계의 불황으로 일거리가 뚝 끊기면서 1998년부터 서울역 지하도를 안방 삼아 잠을 청하는 노숙인 신세가 돼 버렸다. 인력시장을 찾아 다니며 살려고 발버둥쳤지만 허탕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IMF 당시 떵떵거리며 잘 나가던 사장이 부도가 난 경우는 그나마 괜찮은 겁니다.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일자리마저 잃게 되면 죽으라는 소리밖에는 안 되거든요.”
최 사장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변변한 직장 한 번 잡지 못했다. 광주의 한 고아원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13세가 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새우잡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16세에 무작정 상경했지만 건설현장만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런 그에게 IMF는 저승사자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최씨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서울역에서 우연히 만난 자원봉사자의 소개로 서울 중구 자활훈련기관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중구 중림동에 사글세방을 마련한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2004년 겨울 자활근로사업단에 들어가 출장세차를 시작했다.
하지만 첫 일거리부터 꼬였다. “2년 전 어느 새벽 세차를 하는데 물 묻은 걸레가 유리에 얼어 붙으니까 ‘내 주제에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포기하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입술을 깨물고 일을 배웠어요. ‘한국에서 안 되는 게 어디 있니’라는 개그도 있잖아요.”
그가 평생을 부여잡고 사는 ‘성실’이라는 두 글자 덕분에 지난해에는 한 종교기관으로부터 창업자금 6,000만원 무담보ㆍ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창업자금 마련으로 인생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지난해 6월 부분도장 판금 전문광택 범퍼재생 유리용접 등 자동차 외형복원기술을 죽으라고 연마했다. 결국 노숙생활의 한을 풀고 지난해 10월 사직공원 옆에 체인점인 ‘세덴’ 사직점을 열었다.
그가 1개월에 벌어들이는 돈은 80만원 남짓. 남들이 생각하기엔 적은 돈이지만 그에겐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 사글세 30만원을 매달 꼬박꼬박 내고 빚 6,000만원까지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마음이 설렌다는 그는 “노숙인들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다시 한 번 세상과 부딪쳐 승리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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