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방문한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미약품 본사는 이른 아침부터 활기가 넘쳐보였다. 업계 2위 등극에 대한 긍정적 전망들이 쏟아지는데다가 지난해 연말 ‘5,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이라는 보너스까지 더해지면서 사내 분위기는 다소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
5,000만 달러 수출액은 절대적인 기준에서 보면 경이적인 규모라고 하기 어렵지만 한미약품이 제약업체라는 점을 상기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최근 국내 기업의 기술수준이 세계 수준에 근접하면서 첨단기술 제품들이 수출되고 있지만 제약업의 경우는 선진국의 ‘특허 텃세’가 워낙 심해 수출이 쉽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이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수출액 5,000만 달러를 달성한데는 무엇보다 창업주인 임성기 회장의 역할이 컸다. 임 회장은 1980년대부터 해외 진출의 중요성을 역설해왔다. 국내 영업으로 일정 수준까지의 성장은 이뤄낼 수 있지만 메이저 제약사라는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외시장 공략이 필수라는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이 외국의 오리지널 신약을 수입해 팔기에 급급할 때 한미약품은 한국형 개량 신약을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개량 신약은 기존 오리지널 신약과 다른 신규 제제 또는 신규 제형 개발을 통해 오리지널 신약에 버금가도록 만들어진 제품을 말한다.
오리지널 신약에 비해 낮은 가격에 공급이 가능하면서도 약효는 떨어지지 않아 개량 신약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리지널 신약의 특허 만료 이후에나 제조가 가능한 제너릭 신약보다 더욱 이른 시간 내에 생산 판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1987년 내놓은 세파계 항생제 ‘트리악손’이 한미약품 개량 신약의 첫 시발점이었다. 이 제품의 원개발업체인 스위스 로슈사가 1989년 한미약품의 트리악손 제조기술을 600만 달러에 사들이면서 한미약품은 일약 국제적인 주목을 끌게 됐다. 1997년에는 면역 억제제와 관련 ‘마이크로 에멀젼’ 기술을 순수 기술료 6,300만 달러에 20년간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스위스 노바티스사에 수출했다. 이는 당시 제약업계 최고 기술수출 기록이었다.
고혈압 치료제 ‘아모디핀’은 2005년 업계에 개량 신약 돌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2004년 9월 오리지널 신약인 ‘노바스크’를 개량해 만들어낸 아모디핀은 2005년 국산 전문의약품 가운데 최고 판매기록인 약 4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개량신약 선풍을 일으켰다.
양원석 해외사업팀 상무는 “수출 성공 신화의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연구개발(R&D)”이라고 단언했다. 한미약품은 연간 매출액의 10%라는 높은 R&D투자 비중을 자랑한다. 250명에 달하는 연구인력도 올해 300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R&D를 통해 끊임없이 자체 기술을 개발하면서 다른 업체들과의 차별화를 이뤄낸 것이 치열한 해외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상당수의 제약업체들이 유행 제품을 급조해 해외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중국과 인도의 저가 공세에 밀려난 것과는 다른 행보다.
양 상무는 앞으로 미래가 더욱 밝다고 자신한다. 1996년 글로벌 전초기지로 설립한 중국북경한미약품은 메디락(현지명 마미아이)의 선풍적 인기를 바탕으로 매년 30% 안팎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모디핀 이상의 파괴력이 예상되는 비만 치료제 ‘슬리머’와 혈전용해제 ‘피도글’ 등 블록버스터급 개량 신약들도 조만간 출시돼 수출에 가속도를 낼 예정이다.
또 2008년이면 글로벌 기준에 맞는 완제품 공장이 완공돼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원료와 완제품을 동시에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양 상무는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자동적으로 영국 미국 등의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으로 인정 받는다”며 “이렇게 되면 한미약품의 경쟁력은 몇 단계 뛰어오르게 돼 2008년 수출액 1억 달러 목표도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 32년 외길 민경윤 부회장
“R&D 없는 해외 진출은 의미가 없다.”
민경윤 한미약품 대표이사 부회장은 수출을 계획중인 중견 기업들을 만나면 연구개발(R&D)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거듭 당부하고 한다. 1975년 입사 후 32년간 한미약품에서 구슬땀을 흘려온 민 부회장은 “R&D를 통한 기술개발이 없다면 다른 기업과 똑같은 제품을 수출할 수 밖에 없다”며 “이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경우 언제라도 도태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민 부회장은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한미약품 역시 수출 초기에는 외국 업체들로부터 제 가치를 인정 받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은 1989년 ‘트리악손’ 제조 기술 수출 이후부터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당시 기술 수출 전례가 없어 얼마를 요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600만 달러를 불렀는데 바로 수락하더라”며 “지금도 ‘더 높은 가격을 부를 걸’하고 후회하고 있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는 “트리악손의 쾌거 이후 외국 업체들이 한미약품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이때부터 회사는 성장가도를 질주했다”고 말했다. 회사의 기술력이 평가를 받으면서 신기술 수출 로열티도 함께 올라가 1997년 면역 억제제 관련한 기술의 수출 가격은 트리악손 기술 수출액의 10배 이상인 6,300만 달러로 뛰어올랐다.
민 부회장은 한미약품의 성장 중심에는 R&D에 투자가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한미약품은 경기 화성시에 R&D의 총본산인 한미약품 연구센터와 제제연구센터, 본사에 서울연구센터, 경기 시흥시에 한미정밀화학 연구소 등 4곳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일하는 300명에 가까운 연구인력과 매출액의 10%에 달하는 R&D투자액은 한미약품의 원천기술 품목을 계속 증가시켰고, 이는 수출시장에서 승승장구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R&D투자는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톡톡히 재미를 봤다”고 털어 놓았다. 기술개발을 통해 일반 의약품보다는 처방 의약품 개발에 주력한 덕에 의약분업 이후 처방약 수요 급증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만해도 매출액 기준 10위권 밖이었던 업계 순위가 2005년에는 3위까지 올랐고, 지금은 유한양행과 2위 자리를 놓고 경합중이다.
민 부회장은 “한국산 의약품의 경쟁력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제품력이나 시스템, 인력 등 모든 측면에서 열세”라며 “그러나 R&D를 통해 고유 기술을 개발한 뒤 승부하면 승산이 있다는 사실을 한미약품이 실증적으로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박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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