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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 붉은 여왕(The Red Queen)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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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 붉은 여왕(The Red Queen) 下

입력
2007.01.1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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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차이나 시대를 초월해 남녀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수렵인 시대로부터 이어져왔음을 <붉은 여왕(the red queen)> 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런데 애초에 성(性)이란 왜 존재하는 것일까? 효모처럼 인간도 그저 ‘중성’이라는 1개의 성만 있어서, 배에서 싹을 틔워 내 아이에게 내 유전자를 절반 아니라 100% 물려준다면 얼마나 효율적인가.

그리고 세상은 또 얼마나 평화롭고 단순해질 것인가. 연애감정에 시달리는 청춘도, 결혼 조건을 저울질하는 머리싸움도, 조건을 따지다 결국 치닫게 될 치정사건도 싹 사라질 테니 말이다. 성을 이해하려면 ‘붉은 여왕’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붉은 여왕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 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붉은 여왕은 전속력으로 뛰지만 배경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결국 늘 제자리에 머문다. 이것이 진화를 바라보는 최근의 패러다임이다. 과거의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듯 생물은 진보의 방향이나 우등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늘 바뀌는 생물학적 환경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아갈 뿐이다.

성은 붉은 여왕의 법칙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이다. 생물의 생존에 피튀기는 전쟁은 기생생물(병원균)과 숙주의 싸움인데 성이란 기생생물과의 싸움에 대비한 무기경쟁의 핵심 전략이다.

성의 본질은 유전자를 섞는 것이다. 단지 난자의 유전자와 정자의 유전자가 만나 섞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사람(대다수 생물)은 정자 또는 난자를 만들 때, 먼저 부모로부터 받은 두 벌의 유전자를 섞은 뒤에 반으로 나눈다. 이렇게 매번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만들어지고, 역시 새로운 조합의 배우자 생식세포와 결합해 유전자의 다양성을 유지한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생명체는 이렇게 태어난다.

유전자의 다양성은 기생생물과의 무기 경쟁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세포는 조직적합성항원(HLA)을 갖고 있어 자기 세포를 인식하며, 외부 침입자의 항원은 백혈구 같은 면역세포가 기억하고 공격하도록 한다. 이 때 항원-항체 반응은 열쇠-자물쇠처럼 작동한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우리의 세포에 침투하는 열쇠를 찾기 위해 변이를 일으킨다. AI(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우려는 이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에 대한 열쇠를 곧 찾을 만큼 돌연변이가 진전됐다는 의미다.

우리의 면역계는 다양한 병원균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자물쇠와 기억력을 갖춰야 한다. 첨단이 아닌 희소성이 관건이다. 바이러스가 쉽게 열쇠를 따기 시작했다면 이 열쇠에 맞지 않는 옛날 자물쇠를 다시 찾아 채우면 된다. 성이 없다면 이렇게 다양성을 유지할 방법은 없다.

면역계뿐 아니라 성 선택에는 붉은 여왕의 법칙이 작용한다. 경쟁력 있는 특정 유전형질이 득세하면 다시 희소한 유전형질이 유리해진다. 돌고 도는 진화의 쳇바퀴다.

성 선택에 깃든 속임수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예를 들어 남성은 다산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큰 엉덩이와 큰 가슴의 여성을 선택해왔을 것이다. 이에 대해 여성은 허리가 가늘어지도록 진화했다. 실제 선호도 조사에서 남성은 여성의 몸무게나 엉덩이 크기 자체보다 엉덩이-허리의 비율에 좌우됐다.

영국 태생으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과학기자로 활동한 매트 리들리는 과학자들에게 강연을 할 정도로 깊이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2003년 처음 번역된 <붉은 여왕> 은 국내에선 다소 냉담한 반응을 얻었지만 최근 번역을 손질하고 하드커버로 새로 선보였다. 김윤택 번역, 김영사 발행.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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