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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책이랑 놀자] '인종차별'도 권장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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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책이랑 놀자] '인종차별'도 권장도서?

입력
2007.01.1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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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다. 긴 겨울방학, 아이의 빈둥거림이 싫은 엄마들은 이곳저곳 뒤져 ‘권장도서’를 찾아 프린트해온다. “이 순서대로 3권 빌려 주세요.” 뭔가 하고 보면 역시 학년별 권장도서 목록이다.

아이에게 어떤 책을 권해야 할지 잘 모르는 엄마에게 권장도서는 참 고마운 지침서다. 그런데 목록을 들여다보면 의아할 때가 있다. 어느 독서단체가 각급 학교에 배포한 <교과별 추천도서 목록> 의 경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이 ‘옛이야기’ 단원에, 수지 모건스턴의 <엉뚱한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 은 ‘단정한 옷차림을 위한’ 필독도서에 포함돼 있다. 책머리에 있을 작가의 말이라도 읽어보았다면 이렇게 엉뚱한 분류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권장 이유나 추천자의 책임 있는 안내가 빠진 권장도서 목록은 위험하다. 책을 선택하는 사람의 판단 없이 권장도서에만 기대는 것도 위험하다. 권장도서 목록에 들어 있다 해도 관점이나 사실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세계명작동화’가 대표적이다. 백인사회 건설 과정에서 약탈을 아름답게 표현했거나 인종과 계급차별이 있는데도 ‘명작’으로 소개된 예들이 많다. 우리의 어린이 책 창작 수준이 낮고 출판시장이 엉성했을 때 외국에서 들여온 어린이 책을 ‘세계명작동화’라 이름 붙인 습관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1884년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은 미국 문학의 위대한 고전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책은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을 경멸적 단어인 ‘니그로’로 표현해 큰 논란이 됐었다. 그 문제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은 밀봉되어 대학도서관의 이른바 ‘독극물 칸’으로 치워지기도 했다. 1983년 존 월리스가 ‘정제된’ 판을 선보였다. 정제판에서는 ‘니그로’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이 책을 어린이책으로 분류한 것은 의아한 일이다. 이 책에는 무려 스무 건의 끔찍한 살인이 연속된다. 살인은 백인사회가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이 승리했음을 알리는 메시지로 정당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 상태의 원주민은 흉악한 토인-사람을 불로 구워 먹으려 하는-정도로 그려진다.

이야기의 극적 요소를 위해 적대적 관계나 악한 인물 설정은 필요조건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다른 인종, 민족, 문화, 지역에 대한 일방적 편견이나 증오심을 줄 염려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아이들은 책을 읽는 중에 자연스럽게 주인공 편이 된다. 그런데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 인물이 언제나, 하나같이 흑인 또는 유색 인종일 때 같은 조건의 아이들은 마음의 충격을 받는다. 알게 모르게 자신을 비하하고 백인을 동경하게 된다.

어린이들이 읽을 책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갈등을 공생과 화해로, 인류라는 동질성을 강조하며 풀어가야 한다.

어린이 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관장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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