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제안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역정을 길게 인용했다. 자꾸 정략 이야기하는데 1990년 3당 합당 때 안 따라간 것도 정략이냐, 92년 14대 총선때 모두가 당선 안 된다고 하던 부산에서 출마한 것도 정략이냐, 95년 경기도지사 선거 여론조사에서 수차례 1위 했지만 도리를 좇아 (불리함을 무릅쓰고) 부산에서 출마했다, 98년 종로(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2000년 4월 (총선 때) 다시 부산으로 갔다, 2004년 탄핵 때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스스로 함정에 뛰어든 것 아니냐….
야당이나 다수 여론은 정치 환경과 대선 판도를 뒤흔들어 정국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정략적 계산을 의심하지만,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사심 없이 내던지는 삶을 살아온 것을 국민들이 잘 알지 않느냐는 것이다.
새시대의 맏형보다 구시대의 막내로서, 묵혀둔 국가적 과제의 핵심 포인트만 중립적으로 해결하겠다는데, 뭘 그렇게 복잡하게 계산하고 자신을 당대의 책략가로 높이 평가하느냐는 역공도 했다.
● '바보 노무현'의 진정성 의심
사실 '정치인 노무현'의 던지기 정치는 훨씬 일찍 시작됐다. 89년 3월 당시 민주당 초선의원으로 5공청문회 스타덤에 오른 노 대통령은 돌연 의원직사퇴서를 던졌다. 노태우 정부의 의회기능 무력화에 맞서고 생존권적 노동운동에 대한 불법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상도동측의 만류와 설득으로 사퇴의사를 철회한 그는 그 해 12월 31일 열린 전두환 전대통령의 5공비리 및 광주항쟁 청문회 때 증언대로 의원명패를 내던졌다. 내던지기 행태와 거침없는 말과 행동은 '정치인 노무현'이 가꿔온 트레이드 마크이자 무기인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리더십 특성이 집권 후 확대 재생산되며, 정략은 아니더라도 신뢰를 잃어왔다는 점이다. 달라진 것이라면 정치영역에서 재신임, 대연정 등을 제안하면서 수시로 대통령 명패도 필요하면 던지겠다는 '큰 게임'으로 몰아가는 한편, 경제영역에서도 끊임없이 의제를 선점해 시장에 던져댄 것이다. 부동산, 저출산ㆍ양극화, 균형발전, 동반성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사안은 열거하기조차 쉽지 않다.
노 대통령은 여기에 외교ㆍ국방ㆍ안보ㆍ교육 의제까지 얹은 자신의 작업방식을 '멀티 태스킹(multi-task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정치 분야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 전반을 두루 챙기고 있으며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그의 인식과 진단은 현실과 어울리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다. "부동산 외에는 꿀릴 것이 없다"는 특유의 자신감 하나로 새해 벽두부터 곳곳에서 울리는 경고음을 덮기는 역부족이란 말이다.
"하루하루 정치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고 짜증스럽겠지만 미래를 보고 희망을 갖자"던 신년사의 다짐에 비춰봐도 노 대통령의 속내는 도통 헤아리기 어렵다. 대선 등 정치일정이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를 휘저어선 안 된다는 것이 국민적 공감대이고 보면, 노 대통령은 개헌의제를 던진 게 아니라 경제를 내쳤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정부가 안정적 경제관리와 개혁과제 마무리를 내세운 점이나 현대차 등 심상찮은 노사긴장, 내주에 시작되는 6차 한미 FTA협상의 중요성 등을 감안하면 개헌문제를 꼭 이렇게 진행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 경제관리가 당면 국가적 과제
기업들은 중국 등 신흥경제권의 추격과 환율악재, 내수 침체 등으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창조적 혁신과 성장동력 발굴을 동분서주하는 등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중산ㆍ서민층은 삶의 고달픔이 개선될 조짐을 찾기 어려워 허리띠를 더욱 졸라맨다.
노 대통령은 개헌도 하고 민생도 돌보는 멀티 태스킹의 주술(呪術)을 부릴 요량이지만, 어디서 그런 신통력이 나올지 궁금하다. 던지고 치고 받는 게임의 묘미가 참으로 유혹적이라고 해도, 지금 국민은 이를 받아줄 여력도, 즐길 뜻도 없다. 특권과 유착구조가 해체된 곳에 개발독재의 향수가 가득찰까 두렵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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