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들의 연극이 관객의 영혼을 건드릴 때가 있다. 서툴더라도 매너리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긴장과 열의로 관객을 대하기 때문이다. 연초에 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이 직접 만든 <나비눈> 이라는 연극을 보면서도 나는 비슷한 감흥을 느꼈다. 가난한 무대였지만, 세상의 고통과 만나려는 주제의식부터 예술현장을 몸으로 체득하려는 행정가들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비눈>
● 예술행정인들이 만든 아마추어 연극
물론 모든 것이 근사하지는 않았다. 별다른 무대장치 없는 빈 무대는 상대적으로 노숙한 연기력을 요구하는 법이고, 그런 점에서 <나비눈> 은 초반부터 꽤 고전하였다. 아마추어 배우들의 웅얼거리는 말투와 어색한 시선 처리, 불안정한 뒤꿈치, 어디다 두어야 할지 거추장스러운 팔과 손, 게다가 지하도에 살고 있는 거친 노숙자들을 연기하느라 이 단정한 문화관리들은 스스로의 변신에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전문가인 나는 쩔쩔매는 그들을 지켜보며 웃음을 참느라 객석에서 배꼽이 근질거릴 지경이었다. 나비눈>
그러나 눈이 내리면 황량한 겨울이 아름다워지듯, 연극의 후반부에 갑자기 기적이 왔다. 카메오로 잠깐 출연한 박양우 문화관광부 차관이 필사적인 기염을 토하며 무대를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더니, 밑바닥 인생들의 고통이 차츰 모이고 격정이 토해지면서 공연 초반엔 사막처럼 황량해보이던 무대가 세상의 고통과 그에 대한 연민으로 출렁거렸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게 된 저변에는 처음 희곡을 써 보지만 인간의 영혼을 건드릴 줄 아는 시인 신용목(전 정책실 근무)의 필력과 과거에 연출을 했던 심재찬 사무처장의 노련함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공은 평생 처음 무대에 서 보았을 직원들, 행정과 예술을 잇기 위해 연말의 황금 같은 밤 시간을 망년회 대신 예술에 헌납(자발적?)하였을 그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풀이에서 아직도 배우의 흥분에 취해있던 한 직원이 벌떡 일어나 자작시를 낭송하였는데, 그 시에는 '배우는 우리들의 죄를 고백하는 사제'라는 감동적인 표현이 나왔다. 취흥이었겠지만, 연극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행정가의 입을 통해 듣자니 연극 현장에 있는 나로선 특별한 감회가 들기도 하였다.
● 문화 이해하려는 그들이 준 감회 특별
한국 사회에서 근대 연극 정책의 뿌리는 검열과 통제가 우선이었던 식민지 시대의 조선흥행등취체법(朝鮮興行等取締法)이다. 해방 이후에도 이름만 달리한 채 악랄하게 지속되었던 이 억압적인 문화정책의 방향이 지원과 민간 주도로 바뀐 것이 최근 십년.
아직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 그리고 경제적 열악함 속에 고군분투 중이지만, 관료주의적 마인드가 아니라 예술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이렇게 문화의 틀을 빚고 만들어나간다면, 언젠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는 시대가 우리 앞에 열리지 않을까.
공연을 보았던 마지막 날엔 마침 몹시도 눈이 내렸다. 저 나비눈들! 천상으로 다시 올라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았다가 녹아 사라질 운명이지만, 눈에 덮인 신년의 세상은 아름다웠다.
김명화 극작ㆍ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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