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수렁에 빠진 부시 미국 대통령이 그제 미군 2만명 증파 등의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 것은 승산 없는 도박판에 마지막 주사위를 던진 셈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는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이라크에서의 전술적 실책을 인정했으나, 지금 물러나면 파국을 초래하고 미국은 한층 위험한 적과 맞서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미 실패한 전쟁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대통령 개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위해 무리한 승부를 택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 승부수를 띄운 부시 대통령이 오히려 궁지에 몰린 것은 국민의 뜻과 스스로 공언한 약속, 외교안보 원로와 군 수뇌부의 권고, 국제여론 등을 모두 무시한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뒤 전쟁을 주도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교체하고 이라크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다짐했다.
이어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이끈 초당적 이라크연구그룹은 단계적 철군을 권고했고, 군 수뇌부도 병력증강을 통한 정세 안정에 회의적 입장을 개진했다고 한다. 국내의 전쟁지지 여론은 20% 선까지 추락했고, 혈맹 영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여론은 한층 나빠졌다.
■ 이런 대세를 거스른 데 따른 언론의 비판은 혹독하다.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이 마치 우연히 이라크에 들른 관광객처럼 건성으로 잘못을 인정했을 뿐이라고 나무랐다. 저명한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맨은 이라크는 잘못을 모르는 자들의 이기심을 위해 피와 돈을 쏟아 붓는 '허영의 수렁'이라고 개탄했다.
영국 인디펜던트 지는 '어리석은 행진'이라고 비꼬았고, 독일의 쥐드도이체차이퉁은 ' 비극적 원맨쇼'라고 매도했다. 부시 대통령이 국익을 앞세우지만 자신의 명예를 더 소중히 여긴다고 일제히 비난한 점이 두드러진다.
■ 미 의회도 대통령의 엇나간 행보에 비판적이다. 민주당은 상원의 상징적 반대결의를 추진하고 있고 공화당 일부도 동조할 태세다.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전쟁수행 권한을 가로막을 방도는 없지만 대통령을 고립시켜 압박하려는 움직임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특히 대통령이 이라크 상황을 반전시킬 확고한 의지와 계획조차 없이 공허한 명분을 내세워 이기적 목적을 좇는 것에 도덕적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레임덕(lame duck)을 피하려다 데드덕(dead duck) 신세가 될 것이라는 냉소적 진단이 나오는 연유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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