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 이민영씨 사이에 일어난 일을 말하면 아직도 가정폭력과 더불어 과다혼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이찬씨는 폭력을 휘둘렀지만 이민영씨네도 과다혼수를 요구한 잘못이 있다는 식이다.
과다혼수 이야기는 갈등의 당사자인 이찬씨가 이민영씨를 때렸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끌어댄 이야기이다. 그 후 계속된 공방에서 이민영씨는 일관된 이야기를 한 반면 이찬씨는 때린 적 없다에서 7, 8대 뺨을 때렸다로, 임신한 것을 몰랐다, 인공중절일 것이다에서 유산된 태아는 내게도 소중한 아기였다로 말을 바꿔왔다.
계속 말을 바꿔온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없기 십상이다. 더구나 상대방의 말을 흠집내려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런데도 과다혼수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회특성상 이 화제가 사그러들지를 않는다.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려 한 이찬씨네의 공략법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본 셈이다.
● 강자가 희생자 시늉
과다혼수를 요구했다고 해도 가정폭력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말 과다혼수를 요구했었을까 싶다. 결혼 10일만에 파경을 빚었다는 사실이 처음 보도되던 때 이민영씨 어머니가 한 말은 '거기서 딸을 구해온 것을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 말에는 딸이 엄청나게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 비록 이른 파경은 여성에게 더 불리하지만 내 딸이 평생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점, 이 엄마는 딸을 조건 때문에 나쁜 환경으로 등 떠밀 사람은 아니라는 점 등을 시사한다. 딸을 둔 어미라면 그 마음저림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반면 이찬씨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둘이 해결할 문제에 나선 어머니의 경솔한 처신'을 문제삼았다. 내용의 본질이 아니라 태도를 문제삼는 방식이다.
그리고는 폭력 문제가 확대되자 장모가 30억짜리 친구 집을 빗대어 더 큰 집을 요구했다고 비난했다. 다음날에는 남자의 아버지까지 나서서 혼수문제를 언급했다. 이민영씨가 그동안 공개를 꺼려온 증거자료를 들이밀 때까지 혼수문제는 계속 폭력의 희생자를 비난받게 만들었다.
이찬씨의 아버지는 드라마의 출연자를 결정할 수 있는 프로듀서인 반면 이민영씨는 언제든지 다른 연기자로 대체할 수 있는 중급 연기자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이찬씨가 압도적으로 큰 권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이 공개됐을 때 혼전 임신으로 이미지의 타격을 입는 것도 여성이 더하다. 이민영씨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의 지지뿐이다.
물론 대중이 믿어주면 이찬씨가 가진 권력도 흔들린다. 그래서 강자는 대중들의 지지를 흔들기 위해 혼수문제를 들이대며 약자인양 희생자를 자처했다.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상대방의 태도나 도덕성을 문제삼으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으려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여기에 그대로 담겨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여러가지 발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도 참 이찬스럽다.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하지 않고 계속 대통령의 태도나 저의만을 문제 삼는다.
● 문제 본질보다 태도 문제삼아
솔직히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고서도 변변한 일을 실행하지도 못한 김근태씨나 역시 장관 재직시 북한에 다녀왔다는 것말고는 인상적인 게 없는 정동영씨에 반해 청계천을 복원하고 버스운송체계를 바로잡은 이명박씨나 경기도에 외자유치를 확실히 한 손학규씨가 대통령 후보로서 더 눈에 띈다.
그런데 스스로는 정국을 주도하는 의제설정을 하지 못하고서는 대통령의 발제에 번번히 본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한나라 후보는 한나라스러울 뿐이라는 개탄이 저절로 나온다.
단임제는 독재자의 영구집권을 막기 위해서 국민의 공감대를 샀던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내각제나 연임 대통령제를 논의할 만큼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무르익었다.
이제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함께 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이야기로 진전될 법도 한데 그냥 싫다는 주의이다. 한나라 스스로 의회에서 더 큰 권력을 지니고서도 약자 시늉만 한다. 그러니 번번히 끌려다니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