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위기의 과학교육/ <상> 고교수업 홀대받는 '선택과목'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위기의 과학교육/ <상> 고교수업 홀대받는 '선택과목'

입력
2007.01.11 23:54
0 0

서울 K고. 지난해 3학년 이과반 총 148명 중 75명은 물리2, 73명은 생물2를 선택했다. 당초 30명이 지구과학2를 택했지만 학교측은 학생수가 적어 반 편성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물리나 생물로 바꾸도록 했다. 물리와 생물을 선택한 학생 수가 비슷한데도 물리 3개반, 생물은 2개반으로 편성했다. 생물 교사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행 7차 교육과정은 모든 교과목을 선택제로 운영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K고처럼 교사와 교실 수급을 맞출 수 없는 고교 교육 현실에서 학생 선택권은 박탈된 지 오래다.

과목 선택과 수능 시험은 별개

선택 과목이라고 해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물리2반 25명 중 실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물리2를 치른 학생은 5명 안쪽이다. 과학2 중 하나라도 수능 과목으로 포함하는 대학이 서울대 등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 과학 교사 A씨는 “고 1,2학년 학생이라면 차라리 낫다. 고3에게 시험도 안 치는 과목을 공부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수업시간 중 다른 과목 공부라도 열심히 하면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왜 과학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사실‘무늬만 선택’지적을 받고 있는 고교 교육의 문제는 모든 과목에 적용된다. 하지만 과학의 경우 어렵고 점수 따기 불리하다는 인식 때문에 기피현상이 특히 심각하다. 서울 W고 B교사는 “수학과 과학을 선택하려는 학생은 갈수록 줄고 있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이 학교 문과반 학생은 단 한 명도 물리를 배우지 않고 졸업한다고 B교사는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수능시험의 과목선택과 맞물려 더욱 고착화하고 있다. 대학들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 수능에 포함시키는 과학 과목이 많지 않은 탓이다. 인문 사회계 신입생은 물론 이공계 신입생조차 물리와 미적분을 안 배운 채 진학한 경우가 적지 않다. 충북대 과학교육과 오원근 교수는 “이공계 신입생의 60%가 물리와 미적분을 안 배운 학생들”이라며 “2차, 3차까지 모집해야 정원을 채우는 마당에 학생을 유치하려면 어려운 과학 과목은 수능에서 빼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지구과학 교사는 1학년 과학만 가르치기도 한다. 지방의 소규모 학교에서는 전공 아닌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많다. 오 교수는 “수업 과목이 바뀜에 따라 교육대학원을 4번이나 다닌 교사도 만나봤다”며 “그나마 교육대학원 2년을 다닌다면 다행이지만 방학동안 60시간을 이수해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과연 제대로 가르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학력수준 갈수록 떨어져

학생들이 어려운 과목을 기피하는 바람에 교육내용은 더 쉬워지고 학력이 저하하는 악순한도 현실화하고 있다. 수학1, 2에는 미적분이 빠져있어 문과생은 미적분을 배울 기회조차 없다. 화학1에서는 6차 교육과정과 달리 원소와 원자, 주기율표, 결합 등이 아예 빠져있을 정도다.

대학교육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이미 가시화했다. 연세대 학부대학 이보경 교수가 7차 교육과정이 배출한 첫 신입생인 05학번 이공계 신입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단적으로 말해준다. 고교 때 물리·화학2를 이수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대학 성적이 크게 차이가 났다.

화학2 이수 학생들은 대학 기초화학1에서 평균 성적이 B+인 반면 이수 안 한 학생들의 평균은 C0로 평점이 1.3점(4.3점 만점)정도 차이를 보였다. 이 교수는 “대학에 진학하자 마자 학업에 좌절을 겪은 학생들이 이후 대학생활이나 전공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부실한 고교 과학교육이 몰고 온 파장을 우려했다.

전국공과대학장협의회 김수원(고려대 교수) 회장은 “산업사회는 세계 정상 수준으로 가고 있는데 학생들의 실력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면 국가경쟁력은 갈수록 약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 전반의 과학적 소양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 "부실한 과학교육 국가경제 큰 재앙"

과학기술계가 고교 수학·과학교육의 부실을 지적하며 교육과정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바른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바실연), 전국자연대학장협의회, 전국공과대학장협의회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고교 수학·과학교육 더 이상 무너지면 안 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성명은 다음달 교육인적자원부의 8차 교육과정 개편 공고를 앞두고 과학계의 위기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과학단체들은 개편안 보류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채영복 과총 회장은 “고교들에게 무리하게 과목 선택권을 주면서 어려운 수학과 과학을 선택하는 학생이 크게 줄었고,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어려운 내용을 제외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자연대학장협의회 오세정(서울대 교수) 회장은 “7차 교육과정을 받은 고교생들이 대학에 들어온 2,3년 전부터 과학 수학능력의 저하가 문제가 돼왔으나 8차 교육과정에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대학교육의 질과 국가경제의 미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학기술계는 모든 고교생들이 수학 과학 사회과목 중 2과목 이상을 필수로 이수하게 하고 고1 과학 시간을 주당 4시간 이상으로 유지하며 상급학년과 연계되도록 내용을 개편할 것을 요구했다. 과기단체들은 이런 의견을 청와대, 국회, 교육부, 과기부 등에 전달하고 교육부총리를 면담할 계획이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