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직업 화가들은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 정치하고 품격 있는 그림들은 우리 미술사의 훌륭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화단에서 초상화를 열심히 그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대로 그리려면 다른 그림보다 훨씬 어려워서 잘 그려 봤자 본전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고, 사진으로 대신하는 예가 많아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화가 이광춘(49ㆍ경기대 교수)씨의 인물화는 그런 점에서 이채롭다. 지난 해 1년 간 그는 시사주간지 ‘주간한국’의 표지 인물화를 그렸다. 여야 대선 주자를 비롯한 정치인과 기업인, 문화계 인사 등 30명을 담은 그 그림들로 17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인사동의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한다. 전시 제목을 ‘우리 시대의 얼굴’이라고 붙였다. 반추상의 좀더 관념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11점을 함께 선보인다.
그는 중국 헤이룽장 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포 3세다. 루쉰 미술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1984년 5년마다 열리는 중국 국전에서 재중동포로는 처음으로 동상을 받았다. 일본에서 두 해 동안 머물다 88 서울올림픽 때 한국에 들어와 정착했다.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 국내에서 13회 개인전을 했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인물화 중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인물화다. 약간 찡그린 표정이 김 의장의 기질이나 성격을 비교적 잘 표현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건 박근혜 손학규 이명박 정동영 등 대선 주자 외에 한명숙 국무총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야구선수 이승엽, 축구선수 박지성, 배우 김혜자,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등 명사들도 볼 수 있다.
인물화를 그린 지는 10여 년 됐다. 더러 부탁을 받으면 취미 삼아 그리던 것이 꽤 알려져서 여기 저기서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는다고 한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국내 재벌 총수 여러 명의 초상화도 그렸다.
“한때 주문 받고 그리는 초상화는 상업적이고 예술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죠. 그런데 나중에는 제 자신만의 해석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초상화는 싸구려라는 인식도 있는데, 그런 생각을 내가 한 번 바꿔보자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중요한 것은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동양미학은 전신상을 그려도 눈빛을 가장 중시하는 반면, 서양화는 동작, 즉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하죠. 저는 눈빛과 동세를 겸해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한국의 전통 초상화가 완전히 정적이고 엄숙한 것과는 다르죠.”
선화랑측은 그가 그린 초상화가 운필이 힘차면서도 표현이 섬세하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이재언 씨는 “갈수록 침체해가는 우리 사회의 초상화 문화가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02)734-0458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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