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들에게 강의를 하는데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고 있더라구요. 적분 기호를 몰랐던 겁니다. 그러니 수업이 되겠습니까.” 한 지방대 공대 교수의 얘기는 과학기술계가 고교 과학교육의 위기를 절감하는 이유를 자명하게 드러내 준다. 이공계 신입생들의 수학ㆍ과학 학력이 예전보다 크게 떨어진 것을 수업을 통해 절감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의 학력이 실제로 하락하고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각종 국제연구에서 우리 학생들의 수학ㆍ과학 실력은 늘 상위권이다. 2003년 조사된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연구(TIMSS)에서 중2의 수학 성취도는 세계 2위, 과학 성취도는 세계 3위이다.
200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도 고2의 수학 소양은 3위, 과학 소양은 4위였다. 2006년 각종 국제과학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2위(물리 화학 생물)와 3위(수학)에 올랐다.
하지만 대학 교수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학력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오세정(서울대 자연대학장) 전국자연대학장협의회 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전국자연대학장협의회 총회의 핵심 이슈가 바로 대학생들의 기초학력 문제였다”며 “전국 9개 대학 이공계 신입생을 대상으로 중·고 교과서 문제로 수학ㆍ과학 학력을 테스트한 결과, 평균점수가 30점이 채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그래서 떨어지는 수학ㆍ과학 실력을 보충해줄 기초과목을 새로 도입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양대는 2005년부터 이공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수학ㆍ물리ㆍ화학시험을 친다. 수학시험에서 일정 수준을 못 넘긴 학생들은 기초반을 거쳐 다른 과목을 수강토록 반을 나눈다.
연세대도 고교 때 물리2나 화학2를 배우지 않은 학생들은 기초물리나 기초화학을 먼저 수강토록 하고 있다. 고려대는 이공계 1학년 필수과목인 미적분을 3학점에 주 6시간을 강의해 고교 과정을 보완하고 있다. 결국 신입생 첫 학기 수업을 과거 고교 과정으로 채우고 있는 셈이다.
많은 교수들은 대학이 고교 과정을 가르쳐서는 국제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양대 자연대학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신입생 반편성시험을 도입했던 김채옥 교수는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대학을 6년제로 만들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인문계 학생들이다. 문과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고1 때 공통과학, 고2 때 과학1 중 한 과목과 <생활과 과학> 을 들은 후로는 과학과 담을 쌓는다. 연세대 이보경 교수는 “과학1의 경우 내용이 너무 적고 원리 설명 없이 현상만 다루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생활과>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이공계 대학 신입생의 수학과 과학은 이제 대학에서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대학도 인정한다. 하지만 인문계 학생들은 마지막 고교 과학교육 기회를 놓치면 아예 과학적 소양을 갖춘 시민이 될 기회조차 없다”고 지적한다.
김채옥 교수는 “논리적 사고력을 갖춘 시민을 배출하는 것은 입시나 선택권과는 무관하게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교육의 목표”라며 “학생들이 어려워 하고 기피한다고 해서 수학 과학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자문해보라”고 경고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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