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개헌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고 야당의 반대도 심하다.
“개헌은 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불일치로 매년 선거를 치르는데, 사회적 갈등 비용이 너무 크다. 나는 작년부터 원 포인트 개헌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한나라당 유력 인사들도 그런 주장을 했었다. 다만 한나라당은 지금의 세력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 같은데 이를 불식시킬 방안이 필요하다.”
_노무현 대통령의 탈당과 거국중립내각 등이 필요하다는 얘긴가.
“그것을 포함해서 청와대도 진정성을 보여줄 방안을 고심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지금처럼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이전과 입장이 달라진 이유부터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또 대통령의 제안을 정략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이를 보정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_한나라당은 일단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영토나 경제민주화 등으로 논의가 확산돼 대선 판도가 흔들릴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런 걱정엔 이유가 있겠지만, 뒤에서 얘기하지 말고 공식적으로 얘기하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가닥이 잡힐 것이다.”
_개헌을 정략적으로 국민이 60%가 넘는데 개헌이 가능한가.
“이런 때일수록 언론과 여론 주도층의 역할이 중요하다. 있을 수 있는 정략과 불순한 의도가 뭔지를 포함해서 논리적이고 실질적으로 논쟁해야 한다. 그래야 막연한 불신의 실체가 드러난다.”
_개헌 논의가 통합신당 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예측이 많다.
“양 측면이 있을 것이다. 초점에서 조금 비켜나니까 동력이 저하될 수도 있겠지만, 신당 논의가 내실 있게 진행될 수 있는 그늘이 만들어지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_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신당 논의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도 있다고 보나.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의 한복판에 서기 위해 개헌을 제안했다고 하기엔 개헌이 너무 큰 문제 아닌가.”
_노 대통령과의 관계, 솔직하게 얘기해달라.
“정책방향과 노선에선 제일 근접해 있는데, 여러 번 판단의 차이가 있었다. 유쾌한 일은 아니다. 왜 이러나 가끔 되돌아본다. 살아온 역정의 차이, 스타일과 방식의 차이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분양원가 공개, 대연정, 대북송금 특검, 국민연금 개선 방안 등에서 견해가 달랐고, 지금도 신당의 비전과 경로에 대해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_통합신당과 노 대통령의 관계를 어찌 봐야 하나.
“대통령은 성공적인 국정 마무리를 위해 당이 도와주길 바라고, 선거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당으로선 대통령이 돕길 바란다. 노 대통령은 부산 출마를 고집했던 자신의 경험과 캐나다 멀로니 수상의 예를 들어 망하는 길도 택할 수 있어야 한다지만, 이는 특수한 사례다. 우리당이 마음부터 가다듬고 화장도 고쳐야 할 지금은 논쟁이 최소화하도록 대통령이 당을 도와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될 때 당과 당원에게 신세진 것을 갚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당이 대통령을 안 돕는다고 화를 내는 게 청와대의 입장인 것 같아 답답하다.”
_신당 논의에서 한발 비켜서달라는 건가.
“당원의 한 사람으로 관심이 있겠지만 다음 선거를 치를 사람들의 고민과 논의를 존중하고 경청해달라는 것이다.”
_선거를 고민한다면 노 대통령과 확연히 단절할 필요가 있지 않나.
“여전히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50% 이상의 국민들, 2002년에 정권 재창출을 이뤄낸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결집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당시 민주당을 지지한 서부벨트 사람들, 개혁 지지자들, 영남후보 지지자들 상당수가 떠나간 게 현실이지만 재결집 과정에서 그 중의 누구도 배척할 이유가 없다.”
_통합신당의 명분과 방향이 ‘반(反) 한나라당’일 수는 없지않나.
“그건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고 과정이다. 북한과 국지전을 불사하겠다고 하고, IMF 사태를 불러오고서도 여전히 시장 만능주의를 고집하는 세력과 맞설 구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비전은 명확하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고 선진국으로 가자는 것이다.”
_최근 강봉균 정책위의장과 격렬한 논쟁이 있었는데.
“그 문제는 정치윤리에 관한 것이다. 같은 당에서 정책을 갖고 경쟁하는데 느닷없이 비수를 꽂았다. 예전에 빨갱이라고 하던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_신당에 같이 갈 수 없는 것 아닌가.
“정치윤리가 지켜지는 게 먼저다. 방향과 노선은 달라도 반 한나라당 전선에 동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윤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재론의 여지가 없다. 만약 특정인을 배려해서 정치공세를 펴는 것이라면 반성해야 한다.”
_선도탈당론이 대두하고 전대준비위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사수파 일각에선 ‘나갈 사람 나가라??얘기까지 나오는데.
“열심히 노력하는데 당 지지도가 10%대니까 혼란스러워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이 애정을 주진 않고 있지만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헤어지더라도 합리적으로 논쟁하고 결단했을 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_우리당 지지율이 급락한 가장 큰 이유를 뭐라고 보나.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와 탄핵 역풍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했는데, 우리가 잘 해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고 과대 해석했다. 특히 2002년 대선은 반 한나라당 전선의 승리였는데, 막바지 후보단일화의 짜릿함 때문에 노 대통령을 지지한 상당수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_청와대의 인사가 편협했다는 건가.
“그것도 있고. 우리당 의원들이 너무 쉽게 당선되면서 지지자에 대한 무서움과 배려가 부족했다.”
_김 의장은 인지도에 비해 지지도가 낮다.
“내가 부족해서다. 대중사회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또 여당과 정부가 점수를 따지 못했는데 지지를 바라는 게 염치없는 일이다.”
_당내에서 2선 후퇴론이나 기득권 포기 주장이 나오는데.
“여권 내에서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세 사람의 책임이 제일 크다. 사실 작년 12월 2일 예산안이 처리됐으면 물러나려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지금은 난파선에서 키를 잡고 있는데 그걸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나 싶다.”
_의장 취임 직후부터 뉴딜정책에 전념했는데 아직 성과가 안 보인다.
“엊그제 현대차 노조의 행태를 지적했다. 대립하고 갈등하더라도 폭력이 아닌 대화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정부와 노사, 정당과 시민사회가 원탁회의를 만들어 관철시킬 것과 양보할 수 있는 것을 리스트로 만들어 협의하고 교착상태에 빠지면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그걸 하자는 건데 당내 일부 이견도 있고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다. 경제관료들은 대통령한테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를 하자고 하는데, 이건 단기배당를 중시하기 때문에 투자를 경시할 수밖에 없다. 투자가 적은데 성장이 잘 될 리가 없지 않나. 당장은 가시적 성과가 안보이지만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_줄곧 한반도 평화정착 구조를 강조해왔는데.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은 ‘한국한테 제일 좋은 건 북한이 한국에 의존적인 시장경제로 통합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잘못된 것이지만, 개성공단 방문을 강행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북한 근로자 1만명이 땀 흘리고 있었는데 예전에 버스로 공단에 출퇴근하는 걸 자랑스러워하던 우리의 모습이 겹쳐졌다. 2012년이면 38만명이 개성공단에서 일하게 될 텐데, 이게 바로 북한이 우리한테 의존하면서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개혁ㆍ개방의 길로 가는 것이다. 이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미국의 네오콘이나 우리 사회의 뉴라이트는 대북 포용정책을 중단하고 북한을 고립시켜 정권을 바꾸자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북한은 중국한테 의존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엄청나게 커진다.”
_‘김근태 하면 이런 사람이다’ 하고 인식되고 싶은 이미지는 뭔가.
“뉴딜정책으로 서민경제를 살릴 사람, 한반도 평화정착을 통해 동아시아 중심국가로 발돋움할 비전을 가진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다.
대담=유성식 정치부장
정리=양정대 기자 torch@hk.co.kr
■ 김주환 교수가 본 김근태/ 의외로 여유 환한 미소에 딱딱한 이미지가 무색
인터뷰를 위해 서울 영등포 청과시장 옆에 있는 열린우리당 당사를 찾았다. 왠지 썰렁하고 침체돼 있는 듯한 분위기는 끝없이 추락하는 당 지지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근태 의장도 어느 정도 의기소침해 있거나 초조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고 의장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상당한 여유와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열린우리당을 난파선에, 자신을 그 배의 선장으로 비유했다. 당의 낮은 지지율과 사분오열되어 가는 모습에 대해 의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지만 당장 의장직을 사퇴하는 것은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라고 했다. 당 사수파나 노무현 대통령과는 여러 측면에서 입장이 다르므로 이제 각자 제 갈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전략이 정치공학적으론 유리할지는 몰라도 옳은 길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은 반(反) 한나라당의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세력과 집단이 한데 모여야 할 때이며, 또 모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터뷰 중간중간에 터지는 그의 환한 웃음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나타나는 그의 이미지는 늘 딱딱하고 단조로운 무표정이다. 감정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환하다 못해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미소는 당초의 무미건조한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 버리는 힘이 있었다. 김 의장은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는 여건과 가능성을 두루 갖춘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장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커다란 과제는 수렁에 빠진 열린우리당을 어떠한 식으로든 구출해내는 것이다. 대선주자로서의 과제는 한반도 평화와 서민 경제를 위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인 김 의장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표정과 근엄한 말투 대신에 농담 한마디 던지고는 쑥스러운 듯 활짝 웃는, 그 정감 어린 모습을 어떻게 일반 대중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정치인은 대중매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대중매체 속에서 답답해 보이면 그는 그런 정치인이 되고 만다.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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