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문학을 살리겠다며 3~5년에 걸쳐 2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작년 9월 인문대 교수들이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며 지원을 호소한 지 석 달여 만에 나온 대책인데, 발상부터 근시안적이고 비인문학적이다. 우리는 당시 인문학의 발전은 본질적으로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 줄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인문학이 진정 위기라면 그 실체와 본질부터 따져봐야 한다. 이런 식의 지원은 정부가 1999년부터 7년동안 시행한 두뇌한국(BK)21 사업의 재판이다. 당초 과학ㆍ기술 분야에 집중하려 했으나 결국은 나눠먹기로 흘러 인문ㆍ사회 분야에도 이번과 비슷한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한 바 있다. 그 결과가 인문학의 위기여서 또 다시 살려주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표현에 썩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인문 분야를 전공하려는 학생이 없어 후속 학문 연구 세대가 끊길 위험에 처한 것이 위기라면, 서구처럼 대학 교육 과정에 전공 분야를 막론하고 인문학 교양 필수 과목을 늘리고 다양화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연구자는 전공 학과 소속이 아니더라도 교양학부 소속으로 연구ㆍ강의를 계속할 수 있어 돈이 안 되는 분야라도 최소한의 학문 후속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 이런 시스템만 잘 갖추어도 200억원을 쓰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려면 사회적 수요를 잘 고려해 인문학 연구인력의 구조조정부터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표적 연구 중심 대학인 서울대의 경우 홈페이지에 따르면 식품ㆍ동물생명공학부 전임교수는 모두 17명, 산업공학과 19명, 컴퓨터공학부는 30명이다. 그런데 영문학과 교수는 무려 27명이다.
상대적으로만 본다면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과잉이다. 국사학과가 11명인데 독문과 교수가 14명인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다. 이런저런 문제점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진지한 성찰을 토대로 지원 계획을 다시 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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