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사령관은 9일 기자회견에서 유엔사령부의 기능이 앞으로 지원역할로 축소될 것을 시사, 그 동안 주장하던 유엔사 강화론에서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유사시 위기관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벨 사령관의 ‘위기관리’ 강조를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유엔사를 통해 작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연결시키고 있다.
벨 사령관의 이중어법
벨 사령관은 이날 “미래의 유엔군 사령관은 지금과 같이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직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유엔군 사령관은 미래 주한미군의 한국군에 대한 지원역할과 유사한 지원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사의 주요 임무인) 비무장지대(DMZ)관리나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정찰임무를 수행할 때 한국군만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앞으로 유엔사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이 그만큼 줄어들 것임을 시사했다.
국방부측은 이와 관련 유엔사가 수행하고 있는 정전협정 관리업무를 한국측이 떠맡는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유엔사의 핵심임무가 전부 한국군으로 넘어오면 유엔사는 유명무실해진다.
이는 유엔사를 강화하겠다는 그 동안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벨 사령관은 지난해 상원 군사위원회 국방예산 심의 청문회에서 “유엔사를 다국적 연합군기구로 발전시키겠다”고 한 데 이어 9월 기자간담회에서도 “미래 분쟁시 유엔사가 중요한 역할을 분명히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벨 사령관은 동시에 “유엔사 회원국들은 억제력 제공 지원과 잠재성 있는 전쟁을 지원토록 요청받을 것”이라며 “한국군 병력을 지휘할 수 없는 유엔사령관은 정전유지 및 잠재적 위기 고조에 책임을 질 수 없다”며 사실상 유엔사의 기능강화를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는 정전상태에서 위기가 고조돼 전쟁으로 이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며 “때문에 정전을 관리하는 측은 전쟁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정전관리를 책임진 유엔사가 전쟁계획에도 간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유엔사로 연합사 대체?
일각에서는 벨 사령관의 발언을 미국의 실속 챙기기로 분석하고 있다. 한 군사전문가는 “미국이 한국측에 넘기겠다는 것은 유엔사의 정전관리 임무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며 “미국은 별 의미없는 임무를 한국측에 넘기고 명분을 얻으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대신 위기관리를 강조한 것은 유엔사의 군사적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분석했다.
전시 작전권 전환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미국은 한미연합사가 해체된 이후 유엔사를 통해 한반도 유사시 작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상지대 서동만 교수는 “한국에서 교전이 벌어질 경우 실질적으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유엔사는 ‘정전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벨 사령관의 발언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유엔사가 전쟁사령부로 기능을 수행해 한국군을 지휘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전시 작전권 전환 이후 유엔군사령관이 우리 군을 지휘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군사, 외교, 국제법 측면에서 정밀 검토가 필요하다”며 “현재 한미 간에 이와 관련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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