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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함민복 새 산문집 '미안한 마음'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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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함민복 새 산문집 '미안한 마음' 펴내

입력
2007.01.0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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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이르길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했다. 자본주의가 코웃음칠 이 닳아 빠진 경구의 효력을 매번 갱신하는 시인이 있으니, 우리 시대의 ‘가난뱅이’ 시인 함민복(45)씨다.

그가 새 산문집 <미안한 마음> (풀그림ㆍ9,500원)을 펴냈다.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이면 살 수 있는 폐가를 발견하고 홀로 강화도에 들어가 눌러 앉은 지 만 10년. 어민으로 한나절, 시인으로 한나절을 사는 그의 짭짤하게 간이 밴 하루하루가 굴, 조개와 함께 뻘밭에서 따올린 삶의 진주들이다.

보고 있으면 어쩐지 서럽고 애잔하다 결국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 책엔 노총각 아들 장가 보내고 싶은 마음에 여자 양말을 사 들고 오신 팔순 노모의 이야기부터 충청도 산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 함께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강화도 이웃들과 섬의 일상 등이 두루 실렸다.

시인은 아직도 가난해 기름보일러 대신 물 담은 보온밥통을 껴안고 자야 할 때도 적잖이 있는 처지지만, “한 가지 희망이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얼어죽을 것 같은 밤”(82쪽)일수록 그는 더더욱 팔팔 끓는 밥통을 이불 밖으로 내놓는다. 양면 테이프로 벽에 파스를 붙인 후 등의 아픈 부위를 갖다 대며 “통증도 희망”(84쪽)이라고 얘기하는 그의 건강성이 읽는 이의 얼굴을 붉히는 이유다.

시와 삶을 통분해버린 그의 글들은 아름답기로 정평 났다. 좀체 시적 긴장을 잃지 않는, 그리하여 종내 산문적이라는 말의 정의를 교란시키는 그의 글들은, 흐트러진 글이라는 제 본분을 망각하고 태연히 정갈하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은 다 섬이며 섬엔 그리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36쪽), “현재란 시간의 섬이다. 세월이 가는 길, 세상 모든 ‘멈춤들’의 정거장인 시간은 현재의 뭍이다”(41쪽), “섬은 외로워서 지상에서 가장 낮은 울타리, 물울타리를 치고 제가 품고 있는 그리운 마음 상할까 사방에 소금물을 둘렀습니다”(43쪽) 같은 문장들을 읽을 때 독자는 이것이 시인지, 산문인지 잠시 헷갈린다. 어딘가에 밑줄 긋고 싶은 책을 찾는다면, 바로 이 책이 그 책일지도 모른다.

9일 시인은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를 했다. 삼청동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는데, 셀 수도 없는 유수의 시인, 소설가들이 모였다. 소설가 강영숙 김훈 김연수 박민규 은희경 윤성희, 시인 문태준 박주택 박형준 이문재 임선기 이진명 장석남 정끝별, 문학평론가 이남호 고려대 교수, 방송인 이금희, 만화가 허영만…. 이제 그를 더 이상 가난뱅이 시인이라고 불러선 안 될 것 같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사진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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