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9일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지만 첫 관문인 국회 통과부터 쉽지 않다. 노 대통령이 2, 3월 중에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더라도 한나라당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국회에서 부결될 게 뻔하다. 한나라당 의석은 127석으로 개헌 저지에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1(99석)이상보다 훨씬 많다.
노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의 폐단, 20년 만에 찾아온 대선과 총선의 시기적 일치 등 공감할 명분을 앞세웠지만 국회를 설득하지 못하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오히려 국회에서 통과도 안될 개헌 카드를 국면전환용이나 대선 판 흔들기 차원에서 꺼냈다는 비판을 받는 등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일단 적극적 여론수렴을 통해 한나라당이 무조건 반대하지 못하도록 여론몰이를 한다는 생각이다. 노 대통령은 당장 10일 4부 요인을 청와대로 초청, 개헌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등 각계 지도자 등과 연쇄적으로 만나기로 했다. 개헌 필요성에 대해선 이미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여론 만들기에 집중하면 한나라당의 반대가 명분이나 수적으로 위축되리란 기대가 담겨있다.
하지만 이는 노 대통령이 그리는 그림일 뿐이다. 한나라당이 이미 ‘대선용’이라고 일축한 개헌 제안을 뒤늦게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누구보다 정치 셈법에 밝은 노 대통령이 이 같은 점을 모를 리 없다.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 반대로 개헌카드가 국회에서 무산될 경우 제2의 승부수를 던질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이 개헌 논의 무산을 정치권, 특히 야권의 구태정치와 당리당략때문이라고 비난하면서 반(反)한나라당ㆍ 반(反) 보수 목소리를 키우는 등 단계적 대응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있다.
한나라당의 저지로 개헌안이 부결된다 하더라도 그간의 여론수렴 및 명분축적 과정을 통해 ‘한나라당 반대=기득권 집착’이라는 선전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도 보인다. 노 대통령은 내심 개헌을 명분으로 옛 지지층을 규합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경우 개헌안을 둘러싼 국회 공방에서 2004년 탄핵 표결과 유사한 결과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참여정부의 실정과 민심이반 등으로 인해 임기초반 탄핵 국면과 같은 효과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노 대통령은 원치 않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개헌안이 국회 표결에 회부되기도 전에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단계에서부터 맥이 빠져 버릴 개연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노 대통령은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된다. 이 경우 노 대통령은 임기 중도 사퇴 카드를 꺼낼 수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국민투표 등에서 패배한 대통령이 하야 결심을 한 사례가 있었다. 대통령 하야가 조기 대선 등으로 이어질 경우 그 파장은 훨씬 크고 직접적이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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