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부르는 방안을 언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다수 국민여론과 다른 민감한 내용을 정상회담 석상에서 정부 내 사전 조율도 없이 꺼낸 것이라는 점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 유관 시민단체에서는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될 경솔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8일 “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 한일 현안을 대국적 차원에서 풀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비유적으로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불렀으면 어떻겠느냐고 비공식적으로 얘기한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 한일간 공식의제가 아니었고 일본측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이후 한일간에 동해 명칭을 ‘평화의 바다’ 등으로 바꾸는 문제가 논의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 지지(時事)통신은 이날 “아베 총리는 당시 노 대통령의 제의를 즉석에서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어 “정부가 마치 동해 표기를 포기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은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은 동해 명칭변경에 대한 정부 방침과 국민적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통령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상외교는 한마디 한마디가 향후 어떤 파장을 낳을 지 모르는 만큼 특히 민감한 영토문제에 대해 의제에 없는 발언을 한 것은 문제가 적지 않다”며 “외교가 격식파괴로 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동해이름 되찾기 운동을 벌여온 사이버 민간단체인 반크(VANK)는 “일본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대통령의 발언을 악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해연구회의 이기석 회장은 “명칭변경을 검토 할 수는 있으나 국민적 공감대가 우선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평소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부르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며 “동해의 상징성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헤아리지 않고 외교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즉흥적으로 말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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