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카메라는 주변의 빛을 감지해 전기신호로 바꾸어 모니터에 비춘다. 사람이 사물을 볼 때도 물체가 반사하는 빛을 눈으로 감지해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에서 인식한다. 사람은 사물을 ‘본다’고 하지만 카메라는 그렇지 않다. 카메라에는 없으나 인간에는 있는, ‘본다’는 의식작용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해 12월 1호 국가과학자로 선정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 박사의 관심사는 이런 것이다. 사람의 의식작용, 그 중에서도 주변환경에 주의를 집중해 인지하고 반응하는 의식의 실체는 무엇인지 유전자 수준에서부터 인간 행동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밝히려는 것이다.
인간을 특징짓는 지적 의식은 결국 자신의 실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뻗어가고 있다. 의식작용의 범위는 방대하지만 감각적 인지작용이 잠자고 있을 때와 깨어있을 때를 비교하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깨어있을 때 눈에 닿은 빛, 고막에 닿은 음파 등이 감각세포에서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이 전기신호는 뇌의 시상(視床ㆍ Thalamus)을 거쳐 대뇌피질로 전달된다. 대뇌피질에서 시각, 청각, 촉각적 정보들을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신경세포들이 치밀하게 협업, 정보를 종합함으로써 사람은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잠자는 동안 사람은 외부의 소리나 기척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눈은 감았다 쳐도 귀나 코 등은 닫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바로 ‘뇌에서 감각을 전달하는 스위치가 꺼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신 박사는 그 스위치에 해당하는 뇌 속 시상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는 “시상과 대뇌피질을 잇는 신경망이 켜져 있으면 외부의 감각이 대뇌로 전달되고 주의를 집중하는 각성상태이며, 신경망이 꺼져 있으면 외부 감각의 전달이 억제되고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된다”고 설명한다. 신경망이 켜져 있느냐 꺼져 있느냐 하는 것은 신경세포에 있는 T-타잎 칼슘 채널(통로)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로 조절된다. 신경세포는 칼슘이 유입되면 흥분상태가 되며, 칼슘이 드나드는 통로를 여닫음으로써 이 농도를 조절한다.
잠 잘 때와 깨어있을 때 뇌에서 전기신호의 흐름이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은 뇌파를 통해 알 수 있다. 깨어있을 때 나오는 뇌파는 8~13㎐의 알파(α)파와 13㎐ 이상의 베타(β)파이다. 특히 양궁 골프선수들에 대한 연구에서 알파파가 나올 때 고요하게 주의집중이 잘 된다는 것이 확인되곤 했다.
잠자고 있을 때 뇌파는 사뭇 달라 알파파는 없어지고 3,4단계의 깊은 잠에선 2~4㎐의 느린 파가 나온다. 하지만 주로 꿈을 꾸는 렘 수면에서는 마치 각성상태와 비슷하게 베타파가 생기고 눈동자 움직임이 빨라진다. 다만 움직이는 근육은 완전히 풀려 꿈 속에서 보고 느끼더라도 그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감각, 수면, 주의력 등이 서로 연관돼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들이다. 사람에게서 여러 질병들이 수면장애와 관련 있다거나, 쥐에게서 시상의 유전자가 고장난 경우 간질과 같은 질병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 아이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의 경우 전문의들은 수면과 각성 메커니즘의 이상과 관련있다고 생각한다. ADHD란 잠시도 가만히 앉아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고 남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극도로 산만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에게 진정제가 아닌 중추신경 흥분제를 처방하면 증상이 완화된다. 쉽게 말해 잠 깨는 스위치를 약으로 켜준 셈이다.
미국 플로리다대 의대 소아신경과의 폴 카니 박사는 지난해 간질 아동 30명에게 수면장애를 치료하자 간질 증상과 ADHD가 완화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카니 박사에 따르면 이들 중 24명이 깊은 잠을 못 자고 수백번씩 깨는 수면장애를 갖고 있었고 22명이 ADHD증상을 보였다.
신 박사는 정신분열병도 시상의 작동이상과 관련있다는 가정을 한다. 시상 관련 유전자 이상을 유발한 쥐는 사람의 정신분열병과 비슷하게 사회적 상호작용을 전혀 안하고 정신분열병 치료제를 투약하면 증상이 좋아지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신 박사는 다양한 형질전환 쥐를 이용해 이러한 각성-수면의 메커니즘을 유전자 수준부터 완전히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시상과 대뇌피질을 잇는 신경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혀내는 것은 곧 의식활동의 중앙처리장치(CPU)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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