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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규제와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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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규제와 바보

입력
2007.01.0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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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압력으로 일본이 환율절상에 동의한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경제는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다. 1달러 240엔이던 환율이 3년 만에 130엔 대로 수직하락하자 수출경쟁력에 비상이 걸린 정부는 경기부양에 나섰다.

5%였던 정책금리가 1년 반 사이에 2.5%까지 떨어졌다. 6조엔 규모의 재정도 풀었다. 경기는 살아났지만 저금리에 넘치는 시중자금이 부동산에 몰리면서 버블경제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부동산을 잡기 위해 거꾸로 금리를 6%까지 올리고, 부동산대출 총량규제까지 단행했다. 거품은 터졌고, 일본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져들었다. 시작도, 끝도 정부였다.

▦ 정부 규제의 대표적 문제점은 획일성과 경직성이다. 목표물만 타격하는 정밀폭격이 아니라 무차별 융단폭격이고, 변화무쌍한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허수아비이기 십상이다. 지난해 작고한 경제학계 거두 밀턴 프리드먼은 '샤워실의 바보'라는 예로 정책의 시차에서 발생하는 정부 정책의 근본 한계를 꼬집었다.

샤워꼭지를 틀 때 더운물이 나오려면 조금 기다려야 하지만 바보는 샤워꼭지를 끝까지 돌렸다가 너무 뜨거운 물이 나오면 반대로 찬물 쪽으로 확 돌리고, 다시 반대편으로 돌리는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 뒷북대책도 문제지만 한번 발동이 걸리면 소나기처럼 퍼붓는 몰아치기도 문제다. 어떤 사회적 문제가 드러나면 각 부처가 모두 나서 대책을 쏟아낸다. 개별 대책 나름으로는 합리성이 있지만 규제가 겹치면 '승수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대책을 안 세우면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오지만 대책의 부작용은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일단 규제를 하고 보는 것이 공무원의 속성이다. 금융감독당국이 최근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총부채 상환비율(DTI)을 일률적으로 40%로 제한한 조치는 그런 규제의 표본이다.

▦ 이미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들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효과를 지켜볼 여유도 없이 샤워꼭지를 끝까지 돌릴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이 절실한 실수요까지 일률적으로 차단하는 획일성 역시 문제다. 집값의 거품은 반드시 빠져야 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대응은 신중하고 지속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조급한 마음으로 성급하게 대응한다면 더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거품을 터트리는 경착륙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김을 빼는 연착륙이 부동산 대책의 목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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