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대화는 공적(公的)이며, 집에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으려 하고, 경쟁적이며, 주의를 끌려고 한다. 여성의 대화는 사적(私的)이며, 큰 모임에서는 입을 다물고, 협동적이고, 안심시키려 하고, 그저 말하기 위해 말하는 경우도 있다.’
‘포르노 영화는 남성을 겨냥한다. 대체로 여러 명의 여자에 의해 남자의 욕망이 충족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경설명이나 유혹의 과정은 가차없이 생략된다. 반면 연애소설은 여성을 위한 것이다. 사랑, 서약, 가정사, 관계를 형성하는 내용이 주된 것이다. 섹스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남자의 몸이 아니라 여자의 느낌이 주로 묘사된다.’
남녀 본성의 차이는 시시한 통념이라거나, 차별적인 성 역할 교육에 의한 것이라고 믿어왔다면, 영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가 쓴 <붉은 여왕> (김영사 2003년 초간 발행)은 충격에 가까울 것이다. 그저 양육방식의 문제였다면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시리즈와 같은 부부관계 상담서적이 그토록 공감을 얻으며 성공했을 리는 없었을 것 같다. 붉은>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에 극도로 예민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면서도 현재 인간의 모습이 성(性) 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하지만 생물 종과 인류 문화를 넘나드는 <붉을 여왕> 을 읽고 나면, 세련되게 포장된 행동들이 사실은 수백만년 전 조상으로부터 전수받은 유전자의 산물임을 간파하게 된다. 붉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 종의 짝짓기의 목표는 나의 유전자를 번성토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같은 목표를 위해 동맹하는 남녀는 불균형적인 투자를 한다. 특히 포유류가 그렇다.
수컷은 몇 초의 짝짓기만으로 아버지가 될 수 있지만 암컷은 오랫동안 새끼를 몸 속에서 키우고 젖을 먹여 길러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남녀 성 선택 전략의 차이를 낳는다. 즉 남성은 가능한 한 수많은 여성과 짝짓기를 하는 것이 유전자를 퍼뜨리는 효과적인 전략이지만, 여성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남성을 까다롭게 고르게 된다.
부모가 육아의 책임을 나눠 진다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영장류보다 조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남성은 수렵 채집인 시절 이후 멀리 사냥을 나가 먹을 것을 구해오고 배우자와 자식을 먹이는 역할을 해왔으며 여성은 집 가까운 곳에서 머물며 아이를 돌보고 과일을 채집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사람의 일부일처제는 일부 조류처럼 자녀의 양육을 분담하고자 하는 남녀 전략의 결실이다.
하지만 남성은 틈만 나면 일부다처제를 추구한다. 권력과 부를 가진 남성이 하렘(haremㆍ많은 여자를 모아놓고 곳)을 구축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한 한 널리 퍼뜨리려는 것은 역사상 수없이 확인된다.
일부일처제는 여성이 아닌, 결혼을 못하는 대다수 피지배 남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은 현대에도 약 5분의1이 혼외정사로 태어난다는 연구가 있다. 여성은 혼외정사의 경우 남편이 아닌 정부를 통해 우수한 유전자를 확보할 수 있는 이익을 얻게 된다. 남편은 그저 자녀 양육에 헌신적이면 그만이다.
이러한 진화생물학적 해석들은 페미니스트들의 강력한 비판에 처할 수 있다. “남녀의 본성은 생물학적으로 그렇다”고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다 보면 이는 뒷전으로 밀린다. 유전자들이 펼치는 치열한 경쟁과 교묘한 전략에 혀를 내두를 것이기에.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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