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밤을 지새우며 목 놓아 울었지만 사랑하는 어머니는 다시 볼 수 없었다.
7일 대구 파티마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어머니 김미자씨의 빈소를 지키는 이승엽(31ㆍ요미우리)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울다 지친 목소리는 가냘프게 떨렸다. 분주하게 조문객들을 맞다가도 가슴을 짓눌러 오는 비통함에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다.
향년 58세. 뇌종양 판정을 받고 5년이 넘도록 투병 생활을 해 오던 고인은 기적을 바라던 막내 아들을 남겨 두고 야속하게 떠나갔다. 이승엽에게 고인은 ‘등불’이었고, 고인에게 이승엽은 ‘희망’이었다.
아버지 이춘광(64)씨와 고인 사이에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승엽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각별했다. 삼성시절 기념비적인 홈런을 때릴 때마다 “어머니에게 홈런을 바친다. 어머니가 빨리 나으시는 게 최대 소원”이라고 말했고, 2005년에는 부모님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 ‘미광’이라는 글자를 언더셔츠와 모자에 새기고 뛰었다.
이승엽은 험한 운동 선수의 길을 택한 막내를 유달리 아껴 왔던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 팀 삼성에 입단했을 때, 투수를 포기하고 타자로 전향했을 때 고인은 든든한 후원군이었다.
이승엽이 2002년 1월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간 사이 고인은 뇌종양 판정을 받고 쓰러졌다. 급거 귀국한 이승엽이 어머니 곁을 지킨 이후 3차례 더 수술했지만 의식은 계속 혼미했다. 이승엽이 2003년 아시아 홈런왕(56개)에 오른 순간을, 이듬해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때린 장면을,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 탄생한 일을 고인은 기억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공교롭게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 아들이 ‘국민 타자’로 우뚝 설 시점에 병석에 눕고 말았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이승엽의 5번째 결혼 기념일에 어머니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이승엽은 이날 요미우리 구단 홍보부를 통해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아직 믿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을 내 던지고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 해주신 분이었습니다. 감사해도 다할 길이 없습니다. 반드시 우승을 차지해서 시즌이 끝난 뒤 어머니의 묘소에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발인은 8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경북 성주로 정해졌다.
대구=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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