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0여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한 중견업체의 노동조합 관계자는 “사측과 구조조정 협상을 통해 명예퇴직금 총액을 6개월분 급여에서 10개월분으로 올렸다.
기대 이상의 성공적인 투쟁이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의기양양하던 그의 말끝이 흐려진 건 해고된 동료들의 재취업과 전직(轉職)을 위해서 노조가 어떤 요구를 했느냐는 질문에서다. “전직이요?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하는 거죠. 노조가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나요.”
40대와 50대를 일컫는 4050 실업자들이 ‘고용의 사각지대’에서 홀대 받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에 밀려 4050실업의 심각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정부 기업 등이 운영하는 전직 지원 시스템도 부실하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실업자는 76만8,000명. 이 가운데 40대(13만4,000명) 50대(7만7,000명) 실업자는 21만1,000명(27.4%)이다. 실업자 3명 중 1명은 중장년인 셈이다.
노동부는 2001년부터 조기 퇴직자의 전직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기업을 돕는 전직지원장려금 제도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활용 실적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2002년에는 510억원의 예산을 배정 받아 4억3,000만원만 집행했고, 지난해에는 23억원의 예산 가운데 절반도 안 되는 10억원을 지원했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해야만 하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증명해야 하는 등 지원 자격 요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고용지원센터 등 관련 기관들의 서비스는 취업 알선에 그치고 있다. 고용지원센터는 조기 퇴직자들의 재취업을 위해 ‘취업희망’과 ‘성공취업’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구직자들은 3일에서 일주일 동안 이력서 쓰기와 면접 보기 등의 재취업 기술을 배운다. 두 차례 구직 프로그램을 들었다는 박모(42)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었지만, 기간이 짧고 내용도 뻔해 취업 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직업능력개발원의 김수원 박사는 “단순히 취업정보를 나열하기 전에 체계적인 개인 상담 등 직업능력과 소양을 키워주는 깊이 있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구직자들에게 자신감과 실질적인 재취업 노하우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명퇴금 올리기에 열을 올릴 뿐 정작 퇴직하는 동료의 재취업에는 무관심하다. 인생 이모작이 필수가 되는 고령화 사회에서 퇴직 위로금 몇 푼보다는 재취업이 더 중요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김정한 위원은 “노조는 지금부터라도 회사에 전직지원제도 강화를 요구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에도 변변한 전직지원 제도는 없다. 한국전력공사 포스코 등 일부 대기업과 공사에서 전직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김수원 박사는 “기업은 구조조정에 따른 중도 퇴직자를 위한 단발성이 아닌 회사 전체의 인사관리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이고 영속적인 전직지원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며 “정부는 전직지원장려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완화해 중소기업도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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