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은 얼마나 되는데요? 대출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면 지금 계약하는 게 낫고, 아니면 이자를 더 주더라도 외국계 대부업체를 알아보시던가….”
4일 오후 경기 구리시 인창동의 한 중개업소. 집값과 대출 한도를 물어보는 구매자의 문의 전화에 이곳 중개업소 박 모 사장은 구매자의 주머니 사정부터 물어봤다. “얼마나 대출이 되는 지 은행에 먼저 확인해보고 연락 주세요.” 통화는 짧게 끝났다. 박 사장은 “이젠 자기 돈 없이는 집 사기 어려워졌다”며 달라진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지역과 가격에 상관없이 2월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확대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요새는 대부분 담보대출 관련 문의가 쏟아져 은행인지, 중개업소인지 헷갈릴 지경”이라며 “눈치보기 장세에 돈줄까지 막혀 매수 심리는 거의 바닥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이미 3일부터 DTI 규제를 전국으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
은행권이 대출 가산금리 인상에 이어 DTI 규제까지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수도권 아파트 매매 시장이 크게 움츠러들고 있다. 공공택지 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와 반값 아파트 시범 추진에 따라 관망세를 보였던 수요자들이 이번 대출 기준 강화로 매수 심리가 잔뜩 위축됐기 때문이다.
DTI 규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주택은 시가 3억~6억원짜리 서울 및 수도권 주택.
수도권 아파트는 대출 규제에 포함되는 3억원 초과 아파트와 그렇지 않은 3억원 이하 매물간 분위기가 엇갈리고 있다. DTI 대출 강화 조건에서 벗어나는 전용 25.7평 이하면서 3억원이 넘지 않는 아파트는 대출 규제를 피해 내 집 마련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3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선 매수 문의가 뜸해지고, 거래도 실종되고 있다.
경기 수원시 권선동 대우아파트 인근 D공인 관계자는 “3억원 안팎인 30평대 아파트의 경우 불과 한달 전만 하더라도 브랜드와 입지가 매매 결정 요소였지만 지금은 대출 한도 및 규제 여부에 따라 선호가 달라지고 있다”며 “3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대출 한도 문의만 있을 뿐 정작 거래되는 물건은 대부분 3억원 이하짜리”라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 송산동 일대 S공인 관계자도 “당정간 반값 아파트 시범 공급 합의와 담보 대출 규제 강화로 관망세가 확산되면서 시장 열기가 지난 연말에 비하면 식었다”면서 “그래도 대출 규제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이는 20~30평대 아파트는 큰 타격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지난해 추석 이후 단기 급등기간에 따라 추격 매수에 나섰던 집주인들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화성시 동탄면 H공인 관계자는 “11ㆍ15 대책 이후 매수세가 급감하며 가격이 주춤하자 최근 집을 산 사람들은 상투를 잡은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며 “아직은 보합세지만 집값 하락 심리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미 소득수준에 따라 대출제한을 받고 있는 서울 강남권도 담보대출 규제 강화의 간접 영향권에 들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삼성공인 관계자는 “11ㆍ15 대책 이후 일부 급매물이 거래된 이후 매매시장이 거의 소강 상태를 보였는데 대출 추가제한 조치가 나오면서 이제는 매수 문의조차 뜸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대부분 집값이 6억원 이상인 강남권은 이번 조치로 사실상 달라질 게 없는 곳이지만 시장 심리가 위축되면서 가격도 덩달아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주공2단지 내 고일공인 허봉욱 사장은 “주변 13~15평형의 경우 지난달만 하더라도 6억원 이하 물건은 DTI규제에서 제외돼 매수세가 이어졌지만 DTI 확대 소식이 전해진 후로는 눈치보기가 더 늘었다”고 말했다. 허 사장은 이어 “1,000만~2,000만원 가량 싼 일부 급매물이 나와도 선뜻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며 얼어붙은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해밀컨설팅 황용천 사장은 “전방위 대출 규제는 투기 수요를 차단해 집값 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조치들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내 집 마련 문턱을 높이는데다, 규제가 지나칠 경우 거품 붕괴 우려를 낳을 수 있는 만큼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리ㆍ화성=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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