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이형구(38)의 작업실은 무슨 실험실 같다. 두개골과 동물 뼈가 즐비하고, 책상에는 해부학 책이 펼쳐져 있다. 인체 해부도 같은 괴상한 그림과 의사가 입는 흰 가운, 약품과 펜치,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투명한 기구들, 어디서 본 듯한 정체불명의 동물 화석. 프랑켄슈타인이 태어난 괴짜 과학자의 실험실처럼 으스스하진 않지만, 어째 좀 이상하다.
그는 실재하지 않거나 불가능한 것들을 진짜인 양 그럴싸하게 만든다. 눈과 입이 엄청 커 보이고 눈이 여덟 개로 보이는 투명 헬멧, 팔뚝이 굵어 보이는 장치가 있는가 하면, 벅스 버니, 톰과 제리 등 만화 주인공들의 뼈다귀를 만들고 진짜 화석이라도 되는 양 라틴어 학명까지 붙여 헷갈리게 한다. 앞의 신체 변형 작업 오브젝추얼스(Objectuals) 시리즈는 2004년 성곡미술관에서, 만화 캐릭터 시리즈인 아니마투스(Animatusㆍ움직임, 생명을 불어넣다는 뜻의 라틴어)는 2006년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선보였다. 우스꽝스럽고 해괴하고 더러는 귀엽고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들을 보노라면 씨익 웃음이 나온다.
단체전은 국내외에서 여러 번 했지만, 개인전은 그게 전부다. 그런 그가 올해 6월 개막하는 베니스 현대미술 비엔날레의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건 파격적이다. 그동안 원로나 중진 차지였고, 단 1명을 내보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오브젝추얼스> 의 변형된 신체는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하죠. 예컨대 두 눈을 과장하면 눈알이 겹쳐요. 그 교집합, 실재와 가상이 겹치는 부분을 시각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제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아니마투스> 의 뼈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거죠. 4차원 세계처럼, 존재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영화는 다큐도 있고 픽션도 있잖아요. 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다큐와 허구를 섞어 상상력을 자극하죠.” 아니마투스> 오브젝추얼스>
신체 변형 작업도, 아니마투스 연작도 크게 보면 인체 탐구의 여정이다. 미국 유학 시절 동양인 남자로서 느끼던 왜소 콤플렉스를 지우려고 신체의 한 부분이 커 보이는 기구를 만들어 본 게, 만화적 상상력과 이어지면서 <아니마투스> 를 낳았다. 이 과정에 해부학적 지식은 필수다. 그러니까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그는 크고 작은 뼈 하나하나를 진짜 뺨치게 만들고 칠하고 정밀하게 조립해서 작품을 완성한다. 10명의 조수를 써도 석 달 걸려야 겨우 1 점 만들 수 있는 노동집약적 작업이다. 아니마투스>
그는 작업을 무척 즐기는 것 같다. <오브젝추얼스> 의 신체 변형기구는 워래 혼자 쓰고 놀려고 만들어본 자기만족 장치다. 머리가 찐빵처럼 부풀어보이는 헬멧을 쓰고 뉴욕 지하철을 누비거나,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 같은 작은 거울 두 개를 얼굴 양쪽에 달고 2주 동안 뒤로 가는 연습(심지어 달리기까지!)에 몰두한 적도 있다. 이런 모든 별난 짓은, 장난처럼 보이지만, 신체와 감각과 실재를 해체해서 재구성하는 심각한 작업이다. 오브젝추얼스>
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작가의 다음 작업은 무엇일까. 짐작컨대, 26차원 우주 버전의 신종 아니마투스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 이형구
1969년 포항 출생
98년 홍익대 조소과 졸업
2002년 예일대 대학원 졸업
'아니마투스'(2006, 아라리오갤러리) 'The Objectuals'(2004, 성곡미술관ㆍ이상 개인전), 'Alllooksame?/tuttguale'(2006, 산드레토재단, 이탈리아 토리노) 'Give Me Shelter'(2006, 유니온갤러리, 런던) '아트 스펙트럼'(2006, 삼성미술관 리움) '한ㆍ중ㆍ일 젊은 예술가들'(2004, 국립현대미술관ㆍ이상 단체전) 전 등.
● 내가 본 이형구
천연덕스런 블랙 유머 남달라
작가 이형구는 비밀생체실험부대의 연구실처럼 보이는 섬뜩한 공간을 꾸며 놓고 기기묘묘한 광학 장치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엔 만화 캐릭터들의 뼈를 만드는 <호모 아니마투스> 연작을 발표했는데, 그 꼴이 귀엽고 마냥 신기하다. 덕분에 현대미술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호모>
그가 자신의 작품인 '광학 투구'를 쓰고 뉴욕 거리를 천연덕스레 쏘다니는 영상 기록을 보면, 머리가 네 배 정도는 더 커 보인다. 길 가던 이들은 '그것 참 똑똑한 장난이네' 하는 표정을 지으며 키득거린다. 블랙 유머로 무장한 젊은 예술가의 돌출 행위에 쌀쌀맞은 뉴요커들의 표정도 잠시나마 무장 해제된다. 당대 문화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는 A급 현대미술이 사람을 웃기는 일은 흔치 않다.
정교하게 조립해놓은 기묘한 모양의 뼈 조각 작품들은 마치 새로 발굴한 화석 같아 보인다. 이를 본 국내외 네티즌들의 반응은 이렇다. "만화 캐릭터들이 멸종이라도 했나?" "극사실적인 디테일이 놀랍다" "너무 귀여운데 살짝 소름?돋는다. 재밌고 이상한 기분."
사실 대중문화의 환영 속에서 가상의 화석을 발굴하는 작업은 장시간의 노동을 요하는 고역이다. '오늘날 육체는 어떤 새로운 문화적 차원으로 재편되고 있나'를 묻고 따지는 작가의 주제 의식도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분명, 이 사이비 과학자 같은 작가에겐, 남다른 매력이 있는 게다.
임근준 (미술평론가)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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