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이렇다 보니 먼저 가족 곁을 떠났지요. 하지만 애써 지우려 할수록 피붙이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팔순의 최명자 할머니는 자식 3남매를 만날 생각에 한달 전부터 밤잠을 설치고 있다. 눈썹이 빠지고 피부가 문드러지는 한센병(나병)에 걸린 최 할머니는 43년 전인 1964년 자식들을 보육원에 보내고 요양원에 들어왔다. 혹시 병이 옮길까 하는 걱정에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생이별한 혈육이었다.
7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의 한센인 요양시설 프란치스꼬회 성심원(원장 박영선 수사)은 오랜만에 화색이 돌았다. 최 할머니도 평생 가슴 속에 품었던 한(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됐다며 설레는 마음을 달랬다. 그는 “잘 자라준 아이들이 그저 고맙고 미안하고 보고 싶을 뿐이에요. 야속한 어미가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할 텐데 기억이나 해줄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울과 수도권 출신인 최 할머니 등 10명의 성심원 한센인들은 10일부터 1박2일간 고향 나들이에 나선다. 그 동안의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만 혈육과 연락이 끊겨 이마저도 할 수 없는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운이 좋은 셈이다.
성심원에는 대부분 60세가 넘는 200여명의 환자들이 저마다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 가족과 이웃의 차가운 시선에 떠밀려, 혹은 동네 철부지들의 돌팔매를 피해 고향을 떠났지만 죽기 전에 꼭 한번 돌아가겠다는 희망으로 평생을 버텨왔다.
전선금(62ㆍ여)씨는 핏덩이 딸을 보자기에 싼 채 친척에게 맡겨놓고 떠나왔다. 지금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과 오손도손 살고 있을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다. 전씨는 “평생 날 원망하며 살아왔겠지만 딸에게 젖 한번 물려보지 못하고 떠난 심정이오죽했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행님(75ㆍ여)씨는 41년 전 병든 몸으로 서울의 집을 떠났다. 걸식하며 요양원이 있는 산청까지 걸어왔다. 하지만 그에게도 만날 가족이 있다. 이씨는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66)을 만날 생각에 하루가 지난 수 십년 보다 길게 느껴진다”며 “나처럼 늙어있을 동생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가족을 만나는 설레임보다 걱정이 앞서는 이들도 있다. 임윤상(79)씨의 두 딸은 결혼하면서 시댁 식구들에게 아버지가 이미 사망했다고 알렸다. 가족의 부끄러운 병력(病歷)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씨의 아내는 부모의 임종조차 못한 불효자식 대신 홀로 시부모를 정성껏 모셨다. 임씨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늘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다”며 “당장이라도 만나보고 싶지만 혹 피해를 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한강 유람선, 남산타워, 청계천 등 달라진 서울의 모습을 둘러볼 예정이다. 박순남(69ㆍ여)씨는 “가족간 살가운 정을 애써 잊고 살 수밖에 없었다”며 “다시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재순 성심원 팀장은 “성심원에 계시는 분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가슴 속에 맺힌 한과 응어리를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고향길 여행은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 직원과 단성고 교직원 등의 성금으로 이뤄진다.
산청=정창효 기자 ch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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