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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사이버 정치 수업' 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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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사이버 정치 수업' 해봤더니…

입력
2007.01.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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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 서정초등학교 6학년 은희(13ㆍ가명)는 반장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선거에 나갈 때마다 은희가 얻은 표는 2, 3표. 은희는 마음이 아팠다. “난 왜 인기가 없을까. 공부도 잘하고 마음도 착한데….” 실망이 클수록 은희가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반 친구들은 그런 은희와 더 거리를 뒀다. 현실세계에서 은희는 친구들의 눈에 띄지 않은 보통 학생이었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달랐다. 은희, 아니 아이디(ID) ‘11’은 중앙대 게임콘텐츠연구소 위정현 교수팀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이 학교 6학년 4개 반 1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이버 정치수업’에서 친구들의 큰 지지를 얻어 최고 지도자 자리인 ‘군주’에 올랐다.

위 교수팀은 온라인 롤_플레잉(역할분담) 게임 ‘군주(앤도어즈사 제작)’를 이용해 학생들이 선거 유세, 대표 선출 등 민주주의 과정을 체험하게 한 뒤 실제와 가상세계의 정치의식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비교했다. 온라임 게임을 통해 정치수업을 진행한 것은 위 교수팀이 세계 최초다.

학생들은 본명을 숨기고 ID로만 참가해 팀을 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면서 팀장(행수ㆍ行手)이나 반대표(대행수ㆍ大行手), 4개 반 전체 대표(군주)를 차례로 뽑았는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은희를 비롯해 사이버상에서 행수나 대행수로 선출된 학생 모두 현실 세계의 반장이 아니었다.

수업을 지도했던 변재만 교사는 “오프라인의 반장들이 온라인상에서는 다른 친구와 협력 활동을 잘 해내지 못하거나 과제가 어려워지면서 포기했다”며 “반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학생이 능력을 발휘해 군주 대항전까지 나갔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할까. 위 교수팀과 교사들은 “현실세계에서는 후보의 됨됨이(내적 요인)보다는 외모(외적 요인) 및 얼마나 친한가 여부(관계적 요인)를 갖고 대표를 뽑다 보니 인기투표로 흐르기 마련”이라며 “그런 학생들이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 지도자를 뽑을 때는 책임감 성실성 판단력 등 내적 요인을 중시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학생들은‘게임 내에서 대표를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80.6%가 책임감 성실성 판단력 등 내적 요인을 꼽았다. 외적 요인과 관계적 요인은 각각 11.8%와 7.6%에 불과했다.

사이버 공간의 정치 체험이 현실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엿보였다. 수업 참여 학생들에게 “앞으로 실제 반장선거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뽑겠느냐”고 물었을 때 내적 요인은 66.4%, 관계적 요인은 10.2%였다. 이 수업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반 학생(200명)들이 같은 질문에 내적요인 59%, 관계적 요인 18.3%으로 답한 것과 비교하면 사이버 정치 수업을 통해 판단 기준이 크게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위 교수는 “온라인게임을 통해 정치수업을 체험한 학생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졌음을 보여준 결과”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미국은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 초ㆍ중ㆍ고생에게 후보들의 공약을 설명하고 가상 유세를 펼치게 한 뒤 직접투표를 시킨다”며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체험식 정치학습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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