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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정치 수업/ 능력 있어야 리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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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정치 수업/ 능력 있어야 리더됐다

입력
2007.01.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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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롭던 미운 오리가 백조로 변했어요"

현실세계의 ‘미운 오리새끼 ’는 가상의 세계에서‘백조’가 됐다. 서울 목동 서정초교 6학년생들에게 온라인상에서 롤-플레잉(역할분담)게임 ‘군주’를 하면서 지도자를 뽑도록 한 결과 온라인상의 각 반 대표들은 현실세계의 반장들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교실 주변을 맴돌던 외톨이들에게 가상의 세계는 자신들의 잠재된 능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게임에 참가한 학생들도 친분이나 외모보다는 능력 위주로 그들의 지도자를 뽑았다. 학생들이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에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였다.

외톨이 소녀, A반 대행수에 올라

ID ‘착한 소녀’인 조수영양. 성적은 최상위권이지만 인기는 없었다. 그는 친구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 어울리지 않았고, 친구들도 “잘난 척 한다”며 그를 따돌렸다. 현실의 그런 분위기는 사이버 수업이 시작된 초기 가상의 세계에서도 이어졌다. 조양은 지난해 9월 내내 온라인상에서도 친구들 주변을 돌기만 했다.

9월 말 온라인 소집단(당) 활동이 시작됐고 당원 10명이 대표(행수)를 뽑을 차례가 됐다. 조양은 행수를 해보고 싶었지만 “혹시 반장선거 때처럼 친구들이 나를 또 안 뽑으면 어쩌나” 하며 망설였다. 채팅으로 진행된 유세에서 그는 행수가 되면 팀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조양이 행수로 뽑혔다.

조양은 과제를 누구보다 치밀하고 빨리 파악했다. 모든 과제마다 조양 팀이 1등이었고 ‘착한 소녀’는 반 대표인 대행수가 됐다. 마지막 주. 베일에 가려졌던 온라인상의 ‘착한 소녀’가 조양임이 밝혀지자 반 친구 모두 깜짝 놀랐다. 담임 선생님은“수영이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구나 하는 사실에 놀랐고, 아이들도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던 수영이를 대표로 뽑은 자신들의 선택에 놀랬다”고 말했다.

이제 친구들은 더 이상 조양을 멀리하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착한 소녀’와 친해진 경험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졌다. 조양 역시 친구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담임 교사는 “수영이 주변에 친구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현실의 숙맥, 온라인 정치게임의 ‘최고최고’로.

김군은 친한 친구가 없었다. 집이 학교에서 멀고 학원도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진태는 성실하고 성격도 모난 곳이 없는데 기회가 없어 깊이 사귀는 친구가 없었다”며 “쑥스러움도 많이 타고 단체활동에도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임 게임도 해 본적이 없는 사이버 숙맥이었다.

사이버 정치수업이 시작되자 김군은 조심스러웠다.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 때가 아니면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행수를 해보겠다고 과감히 나섰다. 아이디 ‘최고최고’로 게임에 참가한 그는 친구들과의 온라인 대화에서 협동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김군의 진지함에 몇몇 친구들이 그를 행수로 밀어줬다.

담임 선생님은 “진태는 팀원 사이에 화합 분위기를 만드는 데 탁월했다. 다소 처지는 친구들도 잘 다독이면서 게임에 동참하도록 이끌었다”고 말했다. 중간에 ID를 몇 번씩 바꿔가며 학생들이 서로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했지만 그의 존재는 금방 눈에 띄었고 결국 반대표인 대행수에 뽑혔다.

“대행수는 진태”라고 공개됐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를 유심히 지켜 본 학생들은 “똑똑하고 성실하니까 뽑힐 만하다 했다”고 했지만 잘 몰랐던 아이들은“저 친구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하며 놀랐다. 담임 선생님은 “진흙 속에 묻히고 말았을 진태의 능력이 온라인 정치교육 실험을 통해 빛을 봤다”고 덧붙였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수업 기획한 위정현 교수/ "정치교육에 있어 게임 유용성 입증"

온라인게임 ‘군주’를 통해 사상 첫 ‘사이버 정치 수업’을 진행했던 위정현 교수(사진)는 5일 “온라인게임이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올바른 정치의식을 갖게 하는 훌륭한 도구였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온라인게임이 정치 교육에도 상당한 도움이 됐다는 뜻이다.

위 교수는 “초등학생들이 외모를 중시하거나 능력보다는 친소 관계에 따라 패거리를 만드는 등 어른들의 잘못된 정치 행태를 배우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온라인게임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며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사이버 정치 수업이 현실과 매우 흡사해 스스로 놀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들끼리 당을 꾸렸던 학생들이 다른 당과의 경쟁에서 자꾸 밀리자 점점 판단력 좋고 운영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과 손을 잡았어요. 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판단력, 리더십, 성실성 등 내적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스스로 깨달은 것이지요.”

위 교수는 ‘군주’의 효과도 적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수업에 참여 했던 학생들이 앞으로 반장 선출 시 내적 요인을 중요시 하겠다고 말한 것은 큰 변화”라며 “선거 등 정치 제도를 쉽게 느끼고 재미있게 받아들인 것도 성과로 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위 교수는 이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학교 현장의 정치 프로그램은 인기투표 식으로 이뤄지는 반장과 학교 회장 선거가 전부”라며 “다양한 체험식 정치 학습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와 게임 업계가 온라인 게임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함께 고민할 것을 주문했다.

박상준기자

■ 교육 후 반장투표 기준 물었더니

사이버 정치수업 참가자 16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이들이 지도자를 뽑는 정치적 판단 기준은 수업에 참가하지 않은 학생들과 크게 달랐다. 사이버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정치의식이 성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군주’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은 앞으로 반장선거를 할 때 어떤 점을 가장 크게 고려하겠는가 하는 질문에 책임감(43.2%) 성실성(12.9%) 외모(12.1%) 친한 사이(10.6%) 판단력(8.3%) 순으로 답했다. ‘군주’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6개 학급 학생 240명은 책임감(35%) 친한 사이(18.8%) 성실성(16.6%) 외모(11.7%) 판단력(6.3%)이라고 했다.

수업에 참여 했던 학생들이나 그렇지 않은 일반학생들 모두 책임감을 대표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하지만 수업 참여 학생들이 책임감 성실성 판단력 등 내적요인(66.4%)을 일반학급 학생(59%)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내적요인의 중요도는 남녀학생 사이에도 큰 차이를 보였다. 온라인에서 대표를 뽑을 때 여학생들(86.4%)이 남학생(76.5%)보다 내적요인을 더 중요한 기준으로 꼽았다.

같은 남학생들이라도 수업 참여 학생(66.7%)이 일반 학급 학생(56.8%)보다 내적요인을 중요하게 여겼다. 반면 친분, 즉 관계적 요인은 일반 학급 학생(21.2%)에 비해 훨씬 덜 중요하다(9%)고 답했다. 위정현 교수팀은 “여학생들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고 답했다.

다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외모를 비슷한 중요도로 여긴다는 점은 눈에 띈다. 원은석 박사는 “아바타(가상 인물)를 얼마나 멋진 외모와 액세서리로 꾸미느냐에 따라 인기도가 달라졌다”며 “아바타를 실제 인물이나 다름 없는 것으로 여긴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사용된 온라인게임 '군주'

앤도어즈사가 개발한 1598년 조선시대 배경의 역사 롤-플레잉(역할 분담) 게임.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도입, 백성(유저)들이 후보들의 공약을 평가해 투표로 최고 통치자 ‘군주’를 뽑는다. 80개 마을은 대행수(지도자)와 전장(은행), 여각(주식거래소), 객주(시장), 시전(창고) 등의 책임자인 행수들이 지방자치를 이끈다. 대행수와 행수도 투표로 선출한다. 시장경제체제를 적용해 80개 마을은 각각 일종의 주식회사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박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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