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경제점검회의에서 "앞으로 수도권내 공장 증설은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경쟁력만 생각하면 허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먼 장래를 보면 수도권 집중을 방치할 수 없고, 세계적 추세도 끊임없이 분산정책을 지향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 대통령은 또 우리 사회가 단기적 경기관리와 중장기적 성장동력 확충을 혼동해 경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잘된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지금은 중장기적 효과가 나타나는 개혁과제에 중점을 둘 때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말 자체는 크게 흠잡을 것 없다. 체질이 허약한데 진통제만 잔뜩 투여하거나 오늘 한끼 잘 먹자고 빚을 내 펑펑 쓰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그런 짓을 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동어반복적인 얘기를 굳이 꺼낸 것은 정권 말기를 틈타 수도권 규제 완화 등 갖가지 주문을 쏟아내는 재계에 경고 메시지를 전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균형발전 전략을 뒤흔들지 말라는 것이다.
때문에 노 대통령의 말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 증설을 불허하겠다는 통첩으로 해석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연말에 "기업환경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는 정책을 펴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 비춰보면, 이번 언급은 매우 실망스럽다.
정부가 시장을 훈계하고 정권코드에 시장원리를 꿰 맞추겠다는 오기와 만용으로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노 대통령은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가 성장의 기틀을 잡았다고 얘기하고 나도 인정하지만 아마 어떤 경우라도 (경제성장이) 왔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공무원들의 공로를 격려하려는 취지라고는 하나,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게 한다. 가뜩이나 올해 경제여건을 불안하게 보는 기업들로선 그저 혼란스럽다. 연초부터 사람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의도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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