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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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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거품

입력
2007.01.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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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년 영국 토리당의 로버트 해리는 '남해주식회사'란 무역회사를 세웠다. 무역 수익으로 국채를 인수, 재정위기를 덜기 위해서였다. 1713년 30년 동안 총 11만4,000명의 노예를 스페인령 서인도제도의 노예시장에 공급하기로 한 영국 정부는 그 사업권을 남해회사에 주었다.

그러나 노예 밀무역이 성행하고, 스페인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은 데다 대형 해난사고까지 겹쳐 국채 인수는커녕 남해회사의 경영 자체가 위태로웠다. 위기 탈출구는 엉뚱한 곳에서 발견됐다.

■ 1718년 복권 발행으로 재미를 본 남해회사는 이듬해 국채 인수 규모에 연동해 주식을 발행하되, 국채와 주식을 시가로 교환하는 허가를 얻었다. 액면가 100파운드, 시장가격 200 파운드인 주식을 액면가 200파운드의 국채와 교환할 때마다 액면가 100 파운드의 주식이 남았다. 이를 시장에 팔아 200파운드를 챙길 수 있었다.

설립 목적인 무역과는 동떨어진 사업으로 이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720년 1월 100파운드를 약간 웃돌던 회사 주가는 5월 700파운드, 6월 1,050파운드로 치솟았다.

■ 당시 영국은 투자 대상이 드물었던 반면 자금은 시장에 쌓여 있었다.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하층민을 가리지 않고 대대적 주식투기가 일었다. 허가를 받지 않고 암시장에 주식을 발행하는 회사까지 난립했다.

영국 정부가 거품회사규제법 등 규제책을 내놓았다. 시장은 급반전, 대대적 주가 폭락을 일으켰다. 몇 달 만에 주가는 원위치로 돌아갔고, 파산자와 자살자가 속출했다. '거품'의 어원이 된 '남해거품(South Sea Bubble)' 사건의 전말이다.

■ 부동산 거품 논의가 잦아졌다. 지난해 5월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추병직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의 발언이 시장의 비웃음만 샀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부동산 시장이 잠잠하고, 당국의 금융긴축 의지도 뚜렷하다. 거품을 내버려 두었다가 뒤늦게 급격한 금리인상과 대출 총량규제로 한꺼번에 거품을 터뜨려 장기침체를 불렀던 일본의 예가 거론되는 것도 불길하다.

거품의 혜택은 누리지 못하고, 거품 붕괴의 부담은 최종적으로 떠안을 수 있는 서민층의 처지가 서글프다. 기댈 곳은 정책당국의 살얼음을 밟는 듯한 자세 뿐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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