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이 2006년 한국사회를 정리하는 4자성어로 ‘구름은 짙으나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의 ‘密雲不雨(밀운불우)’를 선정했다는 매스컴의 보도가 필자의 가슴을 복잡하게 했다.
게다가 ‘수백명의 교수가 동의’했으며 ‘대통령 리더십 위기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국민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선정 이유 해설은 생각을 거듭하게 한다. 잠깐 사이에 密雲不雨는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의미하는 성어(成語)로 굳어지고 있다. 단언하건대 이것은 이 말의 오용이다.
이제 널리 알려졌듯 密雲不雨의 출전은 <주역> 이며, 두 번 나온다. ‘소축(小畜)’ 괘의 괘사(卦辭)와 ‘소과(小過)’ 괘의 효사(爻辭)에서다. 효사로 쓰인 소과 괘보다는 더 포괄적 의미를 가진 괘사에서 쓰인 소축 괘를 통해서 살펴보자. ‘소축’은 초효 2효 3효가 양효(陽爻), 4효가 음효(陰爻), 5효 상효가 양효로 이루어진 괘다. 주역>
그러니까 양효 다섯개 가운데 음효 하나가 끼인 형상이다. “소축은 형통하다. 구름이 빽빽한데 비를 내리지 못함은 우리 서교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주희(朱熹)가 풀이한 괘사의 의미다.
우리 조상들이 그 권위를 인정해왔던 주희의 해석에 의거하면 이 괘에서 하나 뿐인 음효는 주(周)나라 건국의 바탕을 조성한 문왕(文王)을 상징한다. 이때의 문왕은 아직 은나라 서쪽지역 제후일 뿐이었으나 바른 정치를 통해 민심을 한 몸에 모으고 있던 중이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은나라 주왕(紂王)은 그를 유리(羑里)의 감옥에 가두었다. 문왕은 자신의 본거지 기주(岐周)가 서쪽 즉 서교(西郊)에 있고, 비록 시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기는 하나 아직은 은나라의 폭정을 뒤엎을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음을 密雲不雨 네 글자에 담았다는 것이다.
이 괘 가운데 하나의 음효가 문왕을 상징하니까 다섯 양효는 문왕의 굴기(崛起)를 저지하는 은나라의 수구세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괘에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혁명의 기운을 축적하고 있으나 아직은 그 시기가 성숙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끝내는 형통, 즉 성공하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密雲不雨는 그러한 형세를 비유한 말인 것이다. 다시 말해 ‘密雲’은 메마른 대지를 축축이 적시고도 남을 비를 머금은 구름, 즉 구악을 일소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대두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 성어가 노 정권의 2006년을 상징하는 말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또 “여건은 조성되었으나 일이 성사되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나타낸다”고도 하였다. <주역> 의 관련 맥락에 충실할 때 여건을 성숙시킨 주체는 누구이며 답답한 상황을 만든 세력은 누구일까? 아마도 노 정권과 ‘수구세력’일 것이다. 주역>
그렇다면 교수신문의 선정 의도와는 달리 이 성어는 매우 고단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노 대통령에게는 더없는 위로를 담은 헌사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노 대통령은 졸지에 문왕 같은 성군이 되는 것이고 수구세력은 주왕을 도와 악정을 하며 문왕의 등장을 가로막는 은나라 벌열세력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다시 말해 密雲不雨 이 성어는 ‘훌륭한 지도자의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거나 ‘어떤 일의 조건이 성숙되었으나 아직 효과를 발생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긍정의 차원에서 비유하는 말로 쓰여야 한다.
갈수록 지식인을 대표하는 교수들의 학문 배경이 서구 일변도가 되면서 동양학에 관련해서 상식선을 확보하기도 어렵게 된 사정이 이런 난감한 일을 야기하게 하였을 것이지만, 이런저런 갈등이 얽히고 설켜 사실도 곧잘 왜곡되는 현실을 연상시키기도 해, 새해 벽두부터 모종의 성찰을 요구하는 듯하다.
김언종ㆍ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