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원래 모습 그대로 세종로 쪽으로 십여 미터 옮기는 공사라고 한다. 십여 미터 옮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는 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돈 쓸 일이 그렇게 없냐고 공무원들에게 따지고도 싶지만, 그냥 말하지 않고 넘어가련다.
말하지 않고 참는 이유는, 복원 공사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근사한 산책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동십자각 근처부터 궁궐 안으로 새로 뚫린 우회통로 덕분에, 그동안 광화문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밤 궁궐을, 그 속살들을 환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24시간 개방이다).
며칠 전, 삼청동에서 밤늦게 술을 마시고 우연히 그 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거기, 너른 침묵과, 풀내음과, 도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바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림막이 세워진 광화문을 보며 계속 중얼거렸다.
공사하다가 현판이나 목재 같은 거 잃어버려라, 용마루와 기와도 잃어버려라. 잃어버려서 아예 다 허물어 버려라. 시민들에게만 담장 허물기 강요 말고, 시민들에게 밤 궁궐을 돌려줘라. 나처럼 만취한 행인 두 명만 더 만났더라면, 그 앞에서 어깨동무하고 연좌시위라도 벌였을 텐데, 좀 아쉽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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