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처형을 정당화한 발언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새해 첫 출근 길에 논평 요청을 받고 "후세인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의 희생자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사형제도 적용 여부는 각국이 선택할 문제"라고 말한 것이 유엔의 이상을 대변해야 할 본분을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후세인 처형이나 사형제도에 관한 본질적 논란을 떠나, 한국민의 자부심을 드높인 반 총장이 출발부터 지혜롭지 못한 발언으로 시비의 대상이 된 것이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다.
그의 발언이 문제된 것은 사형제도에 관한 유엔의 일관된 입장과 배치되는 독단적 견해를 표명한 때문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과 1977년 유엔총회 인권결의는 범세계적인 사형제도 폐지를 권고했다.
이어 법적 효력을 지닌 1989년의 시민적ㆍ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부속의정서는 사형제 전면폐지를 규정하고 있고, 유럽연합(EU) 전체를 비롯해 100개국 이상이 서명했다. 반 총장에 앞서 유엔 이라크 특사가 "유엔은 전쟁범죄, 반 인권 범죄 및 인종청소와 관련해서도 사형에 일관되게 반대한다"고 논평한 것도 이런 맥락에 충실한 것이다.
반 총장은 논란이 일자 "희생자와 정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엔 수장으로서 유엔과 국제사회가 공인한 이상과 원칙에 충실하지 않고 외교적 고려에 치우쳤다는 지적은 통렬하다.
자신이 이제 한국 외무장관이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탓이라는 신랄한 비판까지 들린다. 그가 미국의 지원과 강대국들의 타협에 힘입어 사무총장에 오른 한계를 꼬집은 것이다.
반 총장의 시련은 세계 어떤 직책보다 부담과 갈등이 많은 자리에 오를 때 이미 예고된 것이다. 우리가 그의 영예로운 성취를 함께 기뻐하면서도 인류사회 전체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확고한 소명의식과 지혜와 용기를 발휘할 것을 당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발언 파문을 깊은 성찰의 계기로 삼아 한층 자세를 가다듬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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