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임철순 칼럼] 온몸으로 소통하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철순 칼럼] 온몸으로 소통하기

입력
2007.01.04 23:44
0 0

1987년은 우리나라 민주화에 분수령이 되는 해였다. 그로부터 20년이 된 올해, 대통령을 다시 뽑게 됐으니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이른바 '87년 체제' 20년을 돌이켜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간단없이 발전해 왔다. 독재시대로의 회귀나 쿠데타와 같은 역사의 반동ㆍ후퇴는 이제 불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을까. 연일 주목되는 발언을 하고 있는 노 대통령이 3일에는 "국민의 평가를 잘 받고 싶은 생각을 작년에 완전히 포기했다"고 말했다. 당대의 평가보다 역사의 평가에 더 기대한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과 참여정부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기여를 했다고 믿고 있다.

● 국민의 호평 포기한 노 대통령

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정책기획위원회 위원들과 만났을 때 민주주의의 가치와 한국의 과제에 대해 언급한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가장 획기적인 역사진보의 동력은 민주주의이며, 한국은 87년 이후 역사 역행의 가능성이 없어졌다, 그 다음에 남은 것은 특권과 유착의 구조인데 참여정부는 그 해체를 위해 노력해왔고 성과도 거두었다, 이제 말이 통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적 통합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며, 세계 속에서 한국이 지속적으로 성공하려면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축적해 가느냐가 문제다, 그런데 대화와 타협이 참 어렵다,

말귀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몸으로 소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연설의 요지다.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연설에 잘 짜여진 논리와 질서가 있다.

그런데 대화와 타협의 중요성을 그토록 잘 알고 있는데도 왜 실패하는 것일까. 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키우고 있을까. 소통의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적절하고 유력한 소통수단은 바로 말인데, 노 대통령은 말을 할수록 손해만 보고 있다. 조순형 의원의 지적대로 "누가 말을 하지 말라고 그랬나, 좀 말을 잘 하라는 거 아니냐"는 반론에 부딪히곤 한다.

노 대통령의 말의 문제점은 ①언제나 이기기만 하고 지지 않는 말 ②품위 없는 막말 ③실천과 행동에 비해 너무 많은 말, 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노 대통령은 결코 지지 않는다.

1988년의 5공청문회 시절부터 널리 알려졌듯 논리적이고 정연하다. 2004년 7월 언론사 편집국장들을 청와대에 초청했을 때 받은 인상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이 분은 정말 논리적이구나, 함께 있다 보면 노무현의 신도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 둘째, 그러니 밑의 사람들이 직언을 하기가 어렵겠구나. 무엇이든 말과 논리로 언제나 상대를 이기기만 하면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염증을 내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그가 입을 열면 무조건 듣지 않으려 하게 된다.

품위 없는 막말, 실천과 행동에 비해 너무 말이 많은 점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품위 없는 막말을 자주 함으로써 대통령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고, 공석을 일쑤 사석화(私席化)하곤 한다.

노 대통령의 기여 중 주요한 것이 권위주의의 해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권위주의가 해체된 자리에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새로운 권위를 세우지 못한 요인 중 하나가 막말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통령을 우습게 보는 풍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만든 일이다.

● 말만 소통수단 삼는 건 잘못

"온몸으로 소통하려 한다"는 말은 아주 시사적이고 상징적이다.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정치를 한다고 강조한 노 대통령은 클린턴 블레어를 예로 들면서 지적 능력과 사고력과 철학의 세계가 있으니 그게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노 대통령이 그들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고 문자 그대로 온몸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소통을 말로만 하려 하지 말고 스킨십으로, 바디 랭귀지로 소통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온몸으로 소통을 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