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다 보니 이런저런 사자성어들이 난무한다. 교수들이 뽑은 '밀운불우'에서부터 대선주자들이 뽑은 '한천작우' '구동존이' '운행우시'까지, 경쟁하듯 주역과 대학, 논어를 뒤져 한해를 예견하고 정리하고 계시다. 알고 있는 사자성어라곤 '영웅본색'과 '와호장룡'밖에 없는 처지인지라 절로 기가 죽는 건 당연하다.
기는 죽는다만, 학식 높고 백성 이롭게 하겠다고 나선 몸들이 꼭 이런 식으로 제 유식을 뽐내야만 하는지, 은근슬쩍 반감도 생긴다. 아니, 솔직히 여기가 무슨 동물의 왕국이냐, 니들이 무슨 사자냐, 하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무언가의 줄거리를 잡고, 짧은 문장으로 정의 내리는 것. 그것이 제도교육 틀 안에서 모범생 호칭을 부여받은 자들의 주특기다. 주제 잡고, 요약하기. 그래서 주제 이외의 것들은 배제하기. 아서라, 그게 배제가 아니라 한계가 될라.
당신들이 아무 생각 없이, 제 버릇 못 버리고 인용한 그 말씀들을, 다시 우리 고3 학생들이 논술시험을 위해 열심히 외우고 있다. 머리 아프게 만든 당신들을 욕하면서, 사자처럼 울고 있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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