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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도 사치로 보이던 80년대 그때… 오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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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도 사치로 보이던 80년대 그때… 오래된 정원

입력
2007.01.0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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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래된 정원> 을 보기 전, 머리 속에 꼭 입력해야 할 필수 정보 하나가 있다. 임상수 감독이 연출했다는 사실. 임 감독은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 부터 <눈물>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에 이르기까지 민감한 소재를 논쟁적으로 이끌어낸 ‘문제적 감독’이다.

황석영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오래된 정원> 도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쿨(Cool)한 태도로 삶의 진정성을 찾으려는 임 감독의 시도는 여전하다. 그러나 <오래된 정원> 은 예전의 임 감독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삶을 바라보는 임 감독의 시선에는 온기가 스며있고 세상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부드러워졌다.

1980년대 군부 독재에 반대했다가 감옥에서 젊음을 보내고 출옥한 사회주의자 현우(지진희)는 싹 바뀌어버린 세상에 어리벙벙하다. 투옥 전 “다른 사람은 다 뭐라 해도 나는 너를 믿는다” 했던 ‘마음의 동지’인 어머니(윤여정)는 ‘방배동 빨간 바지’(현우가 그토록 증오했던 독재자 아내의 별명과 유사하다!)라 불리는 부동산 졸부가 돼있다. 시대의 울분이 사라지고 혁명에의 열정도 싸늘히 식어간 자리에 남은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이전투구뿐. 깃발은 간데 없고 동지들의 추문만 나부낀다. 그리고 사랑했던 여인 윤희(염정아)는 세상에 없다.

<오래된 정원> 은 운동권의 뻔한 후일담에 집착하거나 뜨거웠던 한 시대를 단순하게 되새김질하지 않는다. 6개월간의 짧은 만남과 17년의 기나긴 이별, 그러나 결국 사랑을 멀리 보내야 했던 현우의 잃어버린 시간 찾기와 존재의 이유를 되묻는 여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윤희의 입을 통해 ‘살아 있으라’ 하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마저 사치나 죄악으로 여기던 80년대 세대를 위한 각성제인 동시에 한 없이 가벼워지고 무의미해진 이 시대를 견뎌내는 대중들을 위한 진통제로 작용한다. 그렇게 감독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희망을 매개로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며 화해를 권한다.

임 감독 스스로 “참 짜증나는 시대”라고 표현한 80년대를 투쟁의 구호아래 스크럼으로 통과한 386세대에게는 불경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요소가 몇몇 있다. 조직을 위해 개인을 버리는 운동권의 비정함과 고압적인 내부 분위기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 그리고 “인생 길어, 역사는 더 길어, 우리 좀 겸손하자. 너 그거 하지 마, 조직인지 지랄인지” 등의 대사가 그것이다. 여러모로 불편하고 반감도 느껴질 만하다.

그러나 운동권의 옛 신화를 신성불가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관객의 마음에 <오래된 정원> 은 넓은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아무리 빛이 바래고 남루해졌다 해도 사랑의 힘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4일 개봉, 12세.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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