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스탠포드대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도 교수는 유명한 '감옥 실험'을 통해 특수한 환경이 주어지면 인간은 누구든 악마적 본성을 드러낼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인 인물이다. 그가 같은 맥락에서 행한 일련의 심리실험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평범한 여성 8명을 4명씩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게 하고, 맨얼굴의 다른 집단은 이름표까지 달게 한 뒤 또 다른 피실험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한 실험이었다. 그 결과 복면 집단이 신원노출 집단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성이 개인적 책임과 도덕적 의식이라는 제어장치를 풀어 더 과격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의 폭언 행태 역시 그런 심리다. 복면을 쓰고 시위하는 행위를 실형이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이 논의되는 것도 이런 위험을 고려한 때문일 것이다.
경찰이 현장 채증한 사진을 통해 사후에 폭력시위자의 신원을 밝혀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고 보면 일지매나 조로, 스파이더맨, 또 1960년대 우리의 만화영웅 라이파이가 그토록 용감했던 것도 복면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어떤가. 지난 해 경남 밀양의 한적한 농촌마을에서 60~80대 노인 100여명이 한 달 이상 복면을 하고 시위 농성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가뜩이나 물이 귀한 마을에 생수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막아 보려던 마을 사람들이 공장 측의 사진 고발로 줄줄이 구속된 뒤 생겨난 현상이었다.
노인들이 오물을 뿌리는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르긴 했지만 이 경우는 폭력시위용이라기 보다는 화들짝 놀란 노인들의 '순박'한 자구책으로 보는 것이 옳다. 복면이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와 늘 명백한 인과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폭력시위 척결에는 추호의 이의도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독일의 입법례를 참고했다는 이 개정안은 아무리 봐도 법의 과잉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 마스크에 'X'자를 쓴 침묵시위 참가자는 어쩔 것인가. 취지에 동조해 시위엔 참여했지만 혹 가족, 친지에게 걱정 끼칠까 봐 얼굴을 가린 경우는 어떤가.
또 가린 정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여기서 도리어 확인케 되는 것은 우리의 사회적 논의가 걸핏하면 빠져드는 과격성이다. 뭐가 좀 되겠다 싶으면 지나치게 나아가 버리는 현상이다. 균형을 읽으면 명분까지 잃기 십상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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