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어머니가 서울 사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얘야 알지, 집 앞 감나무에 까치가 집을 지었지. 아침에 보니 까치가 없어졌더라. 갑자기 추워졌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이렇게 시작된 편지는 한 페이지를 넘기고서야 '어제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로 끝났다.
까치가 죽었다는 둥 이런저런 사연들이 이어지는 동안 아들은 조금씩 이상한 느낌을 받았고, 나중엔 '혹시 아버지께서…'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서너 문장을 더 내려가서야 아버님의 부음을 접했다.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충격을 덜 주려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 충격적 어법은 '바보 짓'이다
흔히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어느 것부터 말할까"하고 묻는다. 서양에서 쓰는 '굿 뉴스 뱃 뉴스'어법이다. 대개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굿 뉴스를 먼저 듣겠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단 마음을 추스르고, 이어질 뱃 뉴스를 생각할 여유를 가지려는 것이리라. 좋은 일에도 나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나쁜 소식에도 위안거리는 있다는 의미이지만 결국 상대방을 배려하는 화법이다.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종종 사용되어 언론을 이해 시키고 국민에게 가는 충격을 최소화한다.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 사람보다는 오히려 바보에게 더 바랄 것이 많다(구약 잠언 29장 20절). 경솔하고 성급하게 말하느니 바보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의미다.
성급하게 입을 여니 감정에 치우치게 되고, 경솔하게 대응하니 진의가 전달되지 못 한다. 다시 설명해야 하고, 나중에 의도를 부연해야 한다. 조급한 뒷처리는 자신의 상처로 남는다. 일부러 파장을 키우겠다는 계산이 없었다면 말이다.
유난히 '언어에 조급한 사람'이 많았다. 듣는 쪽이 "막말이다" 하고 외치자, 말한 쪽은 "그래, 막말 또 할게"하며 받았다. 결국 양쪽이 '바보보다 못한 꼴'이 됐다. 대통령 대법원장 검찰총장은 물론 전ㆍ현직 고위관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연말 언론들이 뽑은 '올해의 말들' 대부분이 그들의 조급한 언어였다.
'막답' 혹은 '막대꾸'도 있었다. 그들의 말은 편지처럼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형태며, 굿 뉴스보다 뱃 뉴스가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들의 말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사투리나 특유의 어법은 무관하다. 하지만 미움이 뚝뚝 흐르는 표현은 조급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다. 대통령의 민주평통 발언은 실제 공감하는 이들이 있는데도 진의는 묻히고 앙금만 남았다.
변호사와 검사들의 병폐는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을 속여먹기 위해서라거나 조서를 던져 버리라고 조급히 말할 순 없다. 대법원장의 말은 감정적 법조싸움의 단초가 됐다. 세금 폭탄 선언(부동산), 짖는 개 논란(바다이야기), 법ㆍ검 인분 공방(영장기각) 등 일년치만 모아도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언론이 말꼬리를 잡았다고 화만 내지 말고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었는지 스스로 물어보자. 즉각 받아치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이라는 조급함도 막말을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기다렸다는 듯이' 정도가 아니라, 실제 그 말이 튀어나오기를 벼르고 있다가 준비한 칼날을 섞어 더한 막말을 해댄다.
진의를 몰라준다는 분노가 섞여 더 큰 칼날과 함께 돌아온다. 상대방이 애정을 바탕으로 공존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은 턱없는 바보 짓으로 여겨진다.
● 사랑을 담아서 입을 열어야
대통령선거가 사실상 시작됐다.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한 해가 될 것이며 조급한 말들이 무한정 쏟아질 게다. 비수만이 칼이 아니라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바로 설도(舌刀)다. 불가(佛家)에서는 신(身) 구(口) 의(意), 삼업(三業)을 경계한다.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짓는 죄다.
그 중에서 구업을 특히 강조한다. 신업과 의업은 자신의 일이지만 구업은 사람과 사람, 사회와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처는 '애어(愛語)'를 남겼다. 상대를 배려하고 사랑을 담아 입을 열라는 것이다.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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