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중요한 부분은 다 빼고 현 정부와 햇볕정책을 비판한 일부만 놓고 공방을 벌이니 당황스럽고 불만스러웠습니다. 독자들이, 소설이 모두 이것뿐인 줄 알면 어떡하나 초조하기도 했어요.”
소설가 이문열(59)씨가 6년 만에 새 장편소설 <호모 엑세쿠탄스> (민음사)를 펴냈다. 지난 한 해 계간 <세계의 문학> 에 연재한 것을 3권의 단행본으로 묶은 25번째 장편이다. 체류작가 자격으로 1년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다 책 출간을 위해 귀국한 그는 2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연재 마감과 함께 불거진 소설의 정치적 논란을 정면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대선 때는 건강상 국내에 없는 게 좋겠다”며 “정치적 발언을 포함해 모든 대외활동에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세계의> 호모>
‘호모 엑세쿠탄스(Homo Executans)’는 ‘처형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작가가 만들어낸 조어. <사람의 아들> 의 후속편으로 구상된 이 소설은 신성(神性)과 악성(惡性)을 대변하는 두 무리의 죽고 죽이는 전쟁을 통해 386세대인 주인공이 호모 엑세쿠탄스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소설 말미의 강도 높은 현 정부 비판 내용을 근거로 ‘이문열씨, 소설 통해 햇볕정책ㆍ386 비판’‘또 선거철인가, 이문열씨 활동 개시’같은 내용으로 보도하면서 정치적 논란거리가 됐다. 사람의>
“우리 사회가 이상해져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을 봅니다. 현실 정치는 전체 2,800매 중 200매도 안되요. 삽화나 배경 같은 겁니다. 그런데도 작품이 현실정치를 풍자한 정치소설로 오해됐어요.” 그는 논란이 된 소설 속의 삼치회(三癡會)와 오천사(五賤社) 등의 원색적인 현 정부 비판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면서, “종교적, 문화적 구원이 아닌 정치, 군사적 해결을 선택한 사람들이 민족주의를 잘못 활용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스라엘사를 빌어 얘기한 부분이 내 견해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작정하고 감정적으로 썼다는 서문을 ‘소설가가 소설을 써놓고 제발 소설은 소설로 읽어 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고약한 시대가 되었다’로 시작한 그는 “1980년대 거대담론 시절의 수작 치고 정치적이지 않은 작품이 있냐”며 “그때는 치열한 산문정신이고 투철한 작가정신이던 것을 지금은 나무라는 게 혹시 내가 보수, 반동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자신을 보수, 반동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미 그렇게 결정이 난 것 같은데”라고 웃으며 “남이 규정한 것도 있고, 내가 감수한 것도 있지만 기꺼이 (그 칭호를) 받겠다. 다 진보 좌파를 하면 안 되니 나 같이 미련스러운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그는 2월 중순 미국으로 돌아가 1년간 더 체류할 계획이다. “지난 5년간 굉장히 소모적이었고, 비참할 정도로 소설 쓰기에 능률이 떨어졌어요. 자업자득인 면도 있지만, 늙어가면서 더 호전적이고 부정적이 돼가는 게 좋은 모양은 아니니까요.”
■ 문제의 서문
“…아무리 몸을 낮춰 살펴보아도 그것은 문학적이지도 문화적이지도 못한 비방이요, 염치없고 상식도 갖추지 못한 정치적 시비로만 들린다. 막말로, 엎어져도 왼쪽으로 엎어져야 하고 자빠져도 진보 흉내를 내며 자빠져야 한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다. …간청하노니, 문학평론가라기보다는 설익은 정치평론가 여러분, 아니 지각한 좌파 논객 제군, 제발 소설은 소설로 읽어달라. 또 간청하노니 독자에게서 스스로 읽고 판단할 기회를 빼앗지 말라. 근거 없는 문학론으로 재단된 선입견을 심어 독자로부터 이 소설을 차단하려 들지 말라.…”(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 서문 중에서) 호모>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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