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남쪽지역은 정글이었다. 팜오일나무가 뒤덮은 원시림지역. 말레이시자 정부는 10년전 이 나무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팜오일은 차세대 친환경 대체에너지로 주목받는 물질이라 잘만 활용하면 미래의 먹거리도 될 수 있었지만, 당시 마하티르 총리는 이 곳을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다. 푸트라자야와 사이버자야는 이렇게 탄생했다.
말레이시아엔 수도가 사실상 3개다. 잘 알려진 콸라룸푸르, 행정수도인 푸트라자야, 그리고 IT수도 사이버자야. 말레이시아 정부는 팜오일 정글을 밀어낸 자리에 최첨단 인텔리전트 도시인 푸트라자야와 미래형 IT도시 사이버자야를 지은 것이다.
누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이 정글 위에 첨단의 인공도시가 들어설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상상하기 힘든 일’을 상상했고, 그것을 결국 현실로 만들었다. 이 상상력은 인도양 너머로 전파돼 두바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이버자야에서 처음 만나는 건물은 림코크윙 테크놀로지 대학이다. 온갖 상상력이 결합된 형이상학적 그림이 건물 벽면에서 이 도시가 ‘상상력의 산물’임을 느낄 수 있다. 이 곳에는 이런 대학이 60개가 넘는다. 외국대학 캠퍼스도 4개가 들어와있다.
IT도시에서 대학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기업이다. 사이버자야에는 IBM 인텔 모토로라 에릭손 등 글로벌 IT기업을 포함, 300여개의 업체들이 입주를 마친 상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세계적 IT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자유무역지대’로 지정된 이 곳은 ▦입주기업에게 100% 소유권을 인정하고 ▦10년간의 면세혜택을 제공하며 ▦멀티미디어 관련 기계수입은 관세도 면제해준다. 또 국영기업인 멀티미디어개발공사(MDEC)를 통해 입주에 필요한 각종 인ㆍ허가를 원스톱으로 처리해주며 인재알선과 건물공사까지 해결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과 기술만 들어오라! 모든 뒷처리는 우리가 해준다’는 것이다.
나자트 마르주키 MDEC 대외협력차장은 “파격적인 지원 덕분에 우수한 외국기업의 입주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그들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농업기반 국가였던 말레이시아는 이제 강력한 정보통신국가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을 끌어들이려면 세제와 금융, 규제완화 외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 거주할 만한, 일할 만한 환경이다.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사이버자야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열대 리조트단지를 연상시키는 주변 환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곳은 우리나라 분당의 3배 면적에 거주인원은 5만명 정도여서 아주 쾌적한 편이다.
사이버자야 옆에 푸트라자야가 있다. 1999년 총리실을 시작으로 행정부서와 법원 경찰청 등이 이전을 완료했지만, 겉으로 봐선 ‘행정도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쭉 뻗은 도로 양편엔 말레시시아 전통양식을 응용한 건물(관공서)들이 도열해있는데, 똑 같은 건물이 하나도 없을 만큼 개성이 넘친다. 도시를 가로질러 조성된 거대 인공호수에는 유람선이 한가로이 떠다닌다. 관광지인지, 휴양지, 테마마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푸트라자야는 도시 전체가 초고속 광통신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말 그대로 똑똑한 인텔리전트 도시. 말레이시아 정부 관계자는 “푸트라자야는 첨단의 기능과 독특한 외관이 조화를 이룬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미래형 최첨단 인공도시”라며 “행정도시지만 관광명소로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푸트라자야와 사이버자야를 ‘미래로 가는 관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2020년 두 도시가 완공되면 말레이시아의 경쟁력도 대도약을 이룰 것으로 믿고 있다. 정글을 미래세계로 바꾼 힘, 그것은 바로 상상력이었다.
콸라룸푸르=한창만 기자 cmhan@hk.co.kr
■ 네덜란드 델프트시, 도심서 車를 없애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60여㎞ 떨어진 델프트시. 인구 9만5,000명의 중소도시다.
어느 도시든 가장 복잡한 곳은 시청근처. 그런데 이상하다. 차를 볼 수 없다. 행인과 자건거만 보일 뿐. 한 행인은 “시청 부근에 오려면 차를 멀리 주차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델프트시에서 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1㎞도심은 자동차가 없는 ‘청정지역’이다. 시청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에는 차량진입을 막는 차단기둥이 서 있다. 이 기둥은 청소차 같은 공공 서비스 관련 등록차량이 다가설 때에만 땅 밑으로 내려간다.
델프트시가 원래부터 이런 곳은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 델프트시는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골치를 썩여야 했다. 미리암 반 우스 델프트시 교통정책과장은 다른 도시처럼 델프트시도 교통문제 해법에 오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했다. “처음엔 시청 광장 지하에 대형주차장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차는 계속 늘어날 텐데 주차장확충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결국 도심에서 아예 자동차를 없애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반발도 많았다. “아니, 무슨 독재국가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차를 못 다니게 하다니” 특히 상인들의 반대가 거셌다.
델프트시의 대안은 자전거였다. 육성대책을 마련했다. 자전거 도로망을 확충하고 자전거 보관대를 도심 곳곳에 설치하고, 자전거 출퇴근자에게는 감세혜택까지 줬다. 주행우선권도 차량보다 자전거에게 부여했고, 신호등체계도 자전거 위주로 바꿨다. 우즈 과장은 “자동차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단 깨버리자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차량 없는 여유로움 속에서 쇼핑을 하게 되자 시내 상인들의 매출은 오히려 예전보다 늘었고 주민전체가 쾌적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던 ‘자동차 없는 세상’을 상상했고, 대신 자전거라는 대안을 찾았기 때문에 델프트시는 주거만족도 최상의 ‘청정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네덜란드에선 델프트시를 벤치마킹해 도심주차장을 없애고 차량진입을 제한하는 도시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델프트시에선 현재 또 하나의 ‘무모한 상상’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 내 최고수준의 기술대학으로 꼽히는 델프트 공대가 추진중인 이른바 ‘슈퍼버스 프로젝트.’ 레이싱 카를 방불케하는 최고시속 250㎞짜리, 연료전지와 인공지능주행시스템으로 구동되는 초고속버스를 만들어 2010년까지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델프트 등 주요 도시들을 운행케 한다는 구상이다. 이 역시 ‘버스는 느리다’는 고정관념을 깬,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 밖에도 델프트시는 최첨단 IT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테크노폴리스’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현지 KOTRA 관계자는 “스키폴 공항과 로테르담 항구가 가까운 교통의 요지 델프트시는 현재 자전거 천국을 넘어 최첨단 기업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며 “무엇보다 톡톡 튀는 상상력이 델프트시를 네덜란드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델프트=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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