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모(34)씨 부부의 정해년(丁亥年) 첫 새벽은 잠 못 드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부부가 밤새 머리맞대고 보람찬 신년 계획이라도 세운 걸까. 아니다. “잠을 설치는 바람에 새해 첫날을 망쳤다”는 박씨의 1일 사연은 이렇다.
0시. “여보, 2007년이다. 올해 태어날 아기 잘 키우자. 차도 사자.” 부부는 들뜬 마음속에 잠자리에 들었다.
0시30분. ‘빰빰빰~ 빰.’ 휴대폰 문자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운명 교향곡이 퍼졌다. ‘행복한 새해 맞아라. ’ 친구 녀석이다. “평소엔 연락도 없더니 새해 인사는 하네.” 박씨는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1시40분. ‘빰빰빰~ 빰.’ 또 왔다. 살포시 든 잠이 확 깼다. 거래처 직원이다. “이건 좀 심하다.” 웬걸 베개에 머리대기 무섭게 부부의 휴대폰은 화음을 만들 듯 각각 울려댔다. 모두 새해 덕담이다. 개중엔 낯선 이름도 있다. 슬슬 짜증이 났다.
3시10분. 휴대폰은 잠도 없다. 부부는 화가 났다. “도대체 누구야. 아무리 편한 세상이라지만 남 생각은 않고 때도 없이 마구잡이로 보내도 되는 거야.” 내용은 보지도 않고 휴대폰 ‘확인’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누르던 부부는 꼭두새벽부터 누구 휴대폰이 더 많이 울렸나 실랑이했다.
6시. ‘2007년 첫 아침 사랑이 가득하길… ♡♡’ 가족의 신년 메시지마저 징그럽다. 부부의 휴대폰은 오후까지 비슷한 메시지를 배달하느라 불이 났다.
전날 밤부터 부부가 받은 문자메시지는 50통이 넘는다. 정체 모를 문자도 10통이다. 부부는 휴대폰 소리에 진저리가 났다.
박씨 부부뿐 아니다. 휴대폰 때문에 잠 못 이룬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사실 바쁜 세상 문자메시지만큼 간편한 신년 인사법도 없다. 일일이 얼굴 맞대거나 전화할 필요 없고 연하장을 써 우편으로 붙일 필요도 없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친소 관계를 떠나 다량으로 원하는 시간에 보낼 수 있다.
문제는 메시지 주문(콜)이 폭주해 제때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구나 ‘2007년 0시0분’으로 맞춰 보내지만 배달시간은 다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평소 시간당 최고가 1,200만콜인데 1일엔 10분(0시~0시10분)동안 무려 900만콜이 왔다. 450% 증가한 셈이다. 1초라도 먼저 쏘는 게 우선 도착하고 짧게는 1~2시간, 많게는 3시간 정도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덕담을 전하려다 시비가 붙는 일도 생겼다. 회사원 서모(32)씨는 “분명히 자정에 보냈는데 친구가 ‘새벽에 받았다’며 짜증 내는 바람에 서로 인상을 붉혔다”고 말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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