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성 78.6세, 여성 81.9세다. 미국보다 수명이 길고 수명이 연장되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암이나 치매 발병률이 높아지는 등 인생 후반부 건강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많은 전문의들은 "암이나 치매에 많이 걸리는 것은 수명이 길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가 문제가 된 것이다.
길고 긴 인생을 건강하게 보내려면 노년기를 맞기 전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헬스 파트너로서 함께 늙어갈 의사를 만나는 것이다. 노년기 건강을 유지하는 핵심 비결은 건강한 생활습관과 질병의 조기 발견인데 두 가지 모두 동반자와 같은 의사가 함께 설계하고 조언하며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 후반기 건강은 중년기에서부터 이어지는 유지과정이 중요하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선우성 교수는 "60대 이후의 건강은 더 이상 악화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40, 50대 중년기에 얼마나 좋은 건강상태를 갖추느냐가 60대 이후 건강수준에 직결된다"고 말한다.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고, 비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여성의 경우 폐경 직후 호르몬 치료나 약물 치료로 골밀도를 늘려 놓는 것 등이 중년부터 이뤄져야 한다.
특히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졌는가 여부는 청년기엔 개인차를 보이지 않지만 인생 후반부를 크게 다르게 만든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간질환 등은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목숨을 앗아가는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으로 이어지고, 각종 합병증에도 시달리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만성질환은 수술 한번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어서 평생 껴안고 살아야한다. 서울아산병원 내과 노인병클리닉 이영수 교수는 "부모는 자식에게 유전자뿐 아니라 생활습관까지 물려준다는 점에서 건강은 대대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유의하라"고 강조했다.
건강한 생활습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만성질환의 꾸준한 관리, 예방접종 등이다. 물론 "사회생활로 한창 바쁜 40대 전후에 어떻게 술 안 먹고, 운동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운동할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면 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식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회식이 많은 사람은 식사비 제한선을 만들어 소식(小食)을 유도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가 들면서 질병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 중 생명을 위협하거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치명적 질환의 경우 가능한 한 일찍 발견하는 것이 수명과 삶의 질을
좌우한다.
문제는 가장 비싼 종합건강진단만 반복한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검사를 자신에게 맞게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족력도 없는 사람이 대장암 내시경을 매년 건강진단에 포함시킨다면 검사받는 고통만 남게 된다.
반면 35세까지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이라면 유방암 검사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또 가족 중 누군가 암이나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했다면 나 자신도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관련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건강진단 결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선우 교수는 "60대의 흡연 남성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기준치를 조금 밑돌아도 기준치를 조금 넘는 젊은 비흡연 여성보다 훨씬 위험도가 높은 것"이라며 "검사 전후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검사의 결과를 해석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맞춤형 검사를 설계하고, 이를 적절히 해석해 대비하려면 자신의 주치의가 필요하다. 주치의는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곳의 내과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등 의사로 잡아 두면 된다.
주치의는 설명을 잘 해 주고, 생활습관 교정에 대한 조언을 적절하게 해 주며,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 좋다. 위 내시경 검사, 간기능 검사, 고지혈증 검사 등은 주치의에게 간단히 받을 수 있으며 추가로 필요한 정밀검사만 설계해 큰 병원을 찾아가면 된다.
또 주치의를 건강정보 상담자로 활용하는 게 좋다. 종합건강진단을 받은 후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요즘 시중에 떠도는 건강보조식품은 먹는 게 좋은지, 배우자를 잃었을 때 우울한 감정은 어떻게 추스려야 하는지도 주치의와의 상담에서 해결할 수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100세인 연구로 이름난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박상철(사진) 교수는 "노화를 누구나 겪는, 돌이킬 수 없는 기능 쇠퇴라고 정의하는 것은 노년의 삶을 운명적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며 노화의 개념 뒤집기를 역설한다. 박교수에 따르면 세포에 독성물질을 노출시켰을 때 나이든 개체의 세포가 손상을 덜 받는다. 결국 노화란 살기 위해 적응한 결과이자 살아가는 과정이라는것이다.
박 교수가 이러한 개념을 '당당한 노화'라고 이름 붙여 강조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전국의 100세 장수인을 직접 만나면서 연구한 결과, ▦소식(小食) ▦적당한 운동 ▦발효음식 섭취등 그 어떤 요인보다 장수에 중요한 것이 긍정적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늙는 법? 생명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과거는 묻지 마라. 내가 예전에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건, 뭘 했건 상관없다. 지금 돈이 없으면, 몸이 예전 같지 않으면 또 어떤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박 교수는 노년기 봉사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인생을 성장기_활동기_봉사기로 규정한다. 마지막 노년은 휴식기가 아닌 봉사기라는 것이다. 대부분 현직에서 물러난 뒤 딱히
할 일을 못 찾고 추억에만 연연하게 되는데 이는 당당하지 않다."
박 교수는 노년기 남성 위기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 100세 이상 장수 노인들의 성비를 보면 남녀 비율이 1대 12인데 이는 세계 평균(1대 7), 일본(1대 4), 코스타리카(1대1) 등과 비교해 봤을 때 남성이 월등히 적은 것이다. 장수 할머니들은 40년 정도를 혼자 살면서도 먼저 간 남편 생각을 별로 하지도 않는다.
반면 남성의 경우 정년 후 모든 사회관계가 차단되고 고립되는데 이 점이 남성의 장수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박 교수는 "남성들은 60대 이후를 위해 40, 50대부터 바뀌어야 한다. 일만 중시하는 태도를 바꾸고 부인과 대화도 많이 해야 한다. 직장에서 물러났을 때를 위해 대화하고 관심을
기울여라"고 당부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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