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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경쟁력이다]<1> 美 MIT 미디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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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경쟁력이다]<1> 美 MIT 미디어랩

입력
2007.01.0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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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ㆍ정보의 시대에 이어 또 하나의 큰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상상력의 파도.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미래를 예측하고 창조해가는 상상력은 이제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자, 경제 패러다임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신년을 맞아 생동감 넘치는 상상력이 눈 앞의 현실로 실현되어가는 세계 곳곳의 경제현장, 건설현장, 연구현장을 집중 취재, 5회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국일보 독자 여러분, 안녕!"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에 온 걸 환영해. 내 이름은 레오나르도(그냥 레오라고 불러). 오늘 미디어랩을 여러분한테 소개시켜줄 로봇이야. 키는 76㎝밖에 안되지만 표정과 제스처는 세상에서 인간에 가장 근접한 로봇이라구.

난 2001년 이곳 미디어랩에서 태어났어. 조작 없이도 스스로 연기하는 로봇을 키워보려고 만들었대. 이 곳 사람들은 나한테 별의별 것을 다 시켜. 단순 동작은 물론 웃어봐, 울어봐, 화내봐라며 감정까지 요구한다니까.

심지어 '이건 나쁜 일, 저건 좋은 일'하면서 선과 악까지 가르치려고 들지. 미디어랩 사람들은 "머지 않아 인간사회를 이해하고 인간과 감정을 나누면서 같이 일할 수 있는 로봇이 필요한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구.

꿈 같은 얘기지? 사실 미디어랩은 그런 곳이야. SF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주제를 갖고 심각하게 토론하고, 전혀 돈 될 것 같지 않은 물건들이나 만들고 있지. 가히 '상상력의 천국'이야.

하지만 공상, 몽상과 상상은 확실히 구분하자구. 상상은 '실현 가능한 생각'이야. 미래에 대한 예측,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지.

예컨대 ▦전자신문 ▦3차원 홀로그램 ▦모션 캡처(움직임을 3차원영상으로 저장하는 기술) ▦웨어러블 컴퓨터(옷처럼 입는 컴퓨터)처럼 한 때는 꿈속 얘기정도로 치부되다가 이젠 실용화 단계로 접어든 획기적 기술들이, 모두 이 곳 미디어랩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꼭 알아줬으면 해. 한국에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다는 통신ㆍ방송융합 역시 이미 1980년대 우리가 '상상'했던 개념이야.

미디어랩 월터 벤더 전 소장은 "상상과 실현은 동전의 앞ㆍ뒷면과도 같은 것"이라며 "이곳에서는 아무리 터무니없는 생각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무제한의 상상을 보장한다"고 늘 강조하지.

한국 사람들도 이제 상상력에 대해 다시 생각했으면 해. 세계적으로 앞서 나가는 것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이지. '상상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얘기야.

중동의 뉴욕으로 부상한 두바이를 보자구. 이게 책이나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론 가능한 얘기겠어? 틀을 깨는 상상을 했고, 그 상상을 설계하고 건축했기 때문에 결국 불가사의한 사막도시가 만들어진거야.

두바이 못지 않은 대역사로 말레이시아에서 짓고 있는 푸트라자야(행정신도시), 사이버자야(IT신도시)도 결국은 상상력의 결실이지. 한국도 행정수도와 여러 신도시를 건설한다는데, 상상력을 가미해서 멋지고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어보는 것이 어때?

미디어랩 혼자 상상력을 외치는 것은 아니야. 덴마크 코펜하겐미래학연구소도 "이제 정보화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상상력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어. 앨빈 토플러 식으로 얘기하자면, 상상력은 제3의 물결(지식)을 넘는 제4의 물결인 셈이지.

상상력,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마. 이 치열한 경제전쟁시대에 어떻게 '블루오션'을 찾겠어? 근면성실도 중요하고 원가절감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창의력이 있어야 해.

경쟁력의 원천은 창의력이고, 창의력은 결국 상상력에서 나온다는 얘기야. 작년 최고 대박상품이었던 미국의 유튜브(동영상 공유사이트)가 대표적인 예지.

한국이 과연 기술로 미국을 능가할 수 있을까? 가격으로 중국을 승부할 수 있겠냐구. 결국 앞으로의 생존은 가격과 기술을 뛰어넘는 창의력과 상상력에서 찾아야 할 거야.

자, 모두들 기억하라구. 미디어랩의 명물로봇 레오 가라사대 "상상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니라."

보스턴=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사람을 이해하는 컴퓨터·접어서 보관하는 車 연구중"

우리 연구소 건물의 특징은 구분된 강의실이나 밀폐된 연구실을 없다는 거야. 벽도 유리라 안이 훤히 보이지. 그 흔한 보안카드 같은 것도 없어. 수업이나 연구자료를 모두 공개하는 건 물론이야. 이런 곳에서 세상 최첨단 연구가 이뤄진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지.

학생들이랑 교수들도 만만치 않아. 얼마 전 휴먼 다이내믹스 그룹소속 교수와 학생들은 잠옷바람으로 학교에 나왔대.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러고 싶었다나. 미디어랩 창립자인 마빈 민스키 교수는 “개방과 창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성이야 말로 상상력의 근간이 된다”고 말하고 있어.

요즘 진행되는 따끈따끈한 연구들을 소개해줄게. 2~3년 전만해도 인간이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주된 연구 주제였지. 옷처럼 입는 컴퓨터가 그래서 만들어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컴퓨터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미디어랩의 주된 관심이야. 휴먼 다이내믹스 그룹에서 만든‘스타트랙 커뮤니케이터’가 대표적이지. 영화 스타트랙에 나오는 것처럼, 음성지시를 내리는 기능도 생길 예정이래. 이 컴퓨터를 목에 걸면 그 사람의 감정, 건강, 생활패턴, 인간관계까지 모든 것을 컴퓨터가 파악하도록 설계됐어.

예컨대 우울증 여부를 스스로 진단해서 병원에 연락을 취해준다든지, 자폐아들이 타인과 의사소통하도록 도울 수 있지. 향후에는 이 기능을 휴대폰에 탑재한대.

다양한 산학협동 연구도 진행중이야. 스마트시티 그룹은 요즘 GM자동차와 빌려 쓰는 ‘시티카’연구에 한창인데, 올해 국제자동차쇼에 선보일 예정이래. 정류장에 비치된 ‘시티카’를 빌려 원하는 정류장까지 직접 몰고 간 뒤 반납하는 거지. 쇼핑카트 같은 개념인데, 실제로 쇼핑카트처럼 접어서 보관하기 때문에 주차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어.

시티카 프로젝트는 자동차뿐 아니라 주변환경도 바꿔야 하기 때문에, 공학도 외에도 법학 사회학 도시학 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생들이 모여 이뤄낸 학제간 공동연구의 사례기도 해.

스피치 인터페이스 그룹에서는 휴대폰을 통해 상대방에게 내 상황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모토로라와 개발중이야. 단순 위치추적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일을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밥을 먹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거지.

원래 이곳 유학생이 본국에 있는 부모를 생각하며 만든 아이디어인데, 곧 스프린트를 통해 제품화까지 한다더군. 이밖에도 100달러 노트북, 냄새를 전달하는 통신 등 기발한 연구들이 많아.

상상력은 거창한게 아니야. 필요에 따라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고,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업은 상용화를 하는 거지. 한마디로 미디어랩은 상상력을 짜내는 곳이 아니라, 창의적 상상력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기반과 분위기를 제공하는 곳이야.

미디어랩이 더 궁금하면 한국인 석사과정학생 김태미(25) 양에게 물어봐. “여기서 학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내 아이디어가 5년 뒤에도 같은 평가를 받으리라는 보장은 교수들도 못하거든요. 15년이나 지속되는 연구도 있어요. 이런 장기적 안목이야말로 상상력의 비결인 거 같아요.”

황당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학생들, 그것을 칭찬하는 교수들, 당장은 전혀 돈이 될 것 같지 않은데도 매년 수십만 달러씩 지원하는 기업들. 이 속에서 상상력은 꽃피는 거지. 사실 나도 그렇게 해서 태어났거든.

아직도 보여줄 것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지. 한국에도 미디어랩 같은 연구소가 있으면 꼭 초대해줘. 성과에 집착하고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런 데 말고, 정말 자유롭고 상상력이 넘치는 연구소말이야.

보스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미디어랩 창립멤버 매코버교수

토드 매코버(Tod Machover) 교수의 방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 음악으로 가득했다.마치 연주 연습실로 가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악기’라고 알고 있는 물건들은 별로 없었다. 돌아가며 맑은 소리를 내는 바람개비, 앉아서 지휘봉을 휘저으면 음악이 연주되는 의자, 레이저를 손으로 건드려 연주하는 하프 등 이른바‘하이퍼 인스트루먼트’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매코버 교수는 MIT미디어랩의 창립멤버 중 하나다. 늘 ‘상상력’과 함께 사는 탓일까. 얼굴도 천진난만해 보였다. 피아노 교사인 어머니와 컴퓨터 그래픽 아티스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줄리어드 음대에서 전자음악을 전공했으며 파리 등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미디어랩에 합류해 현재 ‘미래의 오페라’그룹을 이끌고 있다.

“악기를 다루기 위해 육체를 단련하는 시간을 줄이고 음악성 자체를 키우는데 집중하도록 해 음악 속에서 인류를 자유롭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지능을 넣은 ‘똑똑한 악기’를 만드는 데 십수년을 보냈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인구의 90% 이상인데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10%밖에 안 된다”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90%에게도 음악을 창조하고 연주할 수 있는 행복을 나눠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매코버 교수는 이 문제가 단지 음악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유튜브처럼 일반인들이 콘텐츠를 창작해 보여줄 수 있는 미디어가 늘고 있지만 콘텐츠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며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살려 우수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다음 세대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기술이 삶을 편리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더 행복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지난 20년간 미디어랩은 첨단기술 개발에 주력해 왔으나 앞으로는 그 기술을 통해 개인의 삶이 더 나아지는데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폐아를 위한 연구나 치료용 로봇,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음악 프로젝트들이 바로 그런 연구에 속하겠지요.”

보스톤=문준모기자

어떻게 운영되나

이공계 교육의 전당인 MIT 중심부에 위치한 미디어랩은 100달러 노트북으로 잘 알려진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 등을 중심으로 1985년 설립됐다.

설립목적은 전통적인 학문간 벽을 허물어 공동연구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비전을 제시하자는 것. 통신ㆍ방송 융합,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한 콘텐츠를 다양한 플랫폼에 사용한다는 개념), 유비쿼터스(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는 개념) 등 현 세대의 핵심 디지털 테마들을 정확히 예측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비즈니스 모델은 매우 독특하다. 150여개의 기업ㆍ단체가 미디어랩의 스폰서를 맡으며, 이를 통해 전체 연구비가 충당된다. 이중 기업 지원금이 약 80%, 정부나 관련 시민단체의 기부가 나머지를 채운다. 전체 운영비용은 1년에 약 3,200만 달러. 미디어랩의 스폰서가 되려면 연간 최소 20만달러를 내야 하며,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75만달러 이상을 내기도 한다. 연구비를 지원한 기업은 미디어랩의 성과물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 같은 산학협력 모델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스탠포드의 X미디어 컨소시엄을 비롯, 뉴욕대학과 아리조나 대학 등에도 비슷한 기관이 생기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 도쿄의 첨단 기술연구소가 최근 오픈했고, 한국의 카이스트, 한국정보통신대(ICU)에서도 관련 조직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물론 모든 연구가 순탄한 것 만은 아니다. 기업들은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상상력’연구에 대한 투자를 갈수록 꺼리는 분위기이고, 학계에서도 쉽게 검증하기 어려운 미디어랩 특유의 학풍에 반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랩의 생각은 다르다. 이 곳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학생은 “역설적인 얘기지만 기존 학계나 기업 모두가 불만족할 때 미디어랩의 존재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쉽게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 기존 학계가 동의하는 학문적 접근법이라면, 굳이 미디어랩에서 다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꿈을 키우는 곳입니다. 그 꿈은 언젠가는 꼭 현실이 됩니다. 당장 상업적 쓸모가 없다고, 접근방식이 파격적이라고, 상상력을 접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보스톤= 문준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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