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해가 되면 집권당은 경기를 부양해 정권 재창출을 위한 기반을 닦으려는 유혹에 빠져들곤 한다. 5년, 10년, 20년을 내다보며 만들어져야 할 경제운용이 단 1년만을 내다보며 운용될 때 후유증이 클 수 밖에 없다.
과거 정권들이 이를 입증한다. 김대중 정부 말기의 신용카드 정책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벤처거품 붕괴로 추락한 내수를 살리기 위해 무차별적인 카드발급을 허용했다. 신규분양 아파트에 대한 양도소득세 면제혜택을 주고 각종 대출로 돈도 엄청나게 풀었다. 이 덕에 2001년에 3.8%이던 경제성장률을 이듬 해 7.0%로 껑충 높아졌다. 그러나 대가는 금방 돌아왔다. 가계 빚은 쌓여갔고 신용불량자는 속출하면서 장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외환위기를 불렀던 김영삼 정부의 경제운용도 대선을 앞두고 있었던 점과 뗄 수 없다. 대선을 한해 앞둔 1996년 경상수지 적자가 240억 달러에 달해 달러가 고갈돼 가는데도 정부는 국민소득이란 숫자에 집착해 환율 절하를 외면했고 긴축정책도 외면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 아들의 비리 사건으로 국정이 뇌사 상태에 빠져들면서 동남아발 외환위기를 뻔히 알고도 피하지 못해 결국 한국 경제는 쓰러졌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지난해부터‘인위적 경기부양은 절대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보다는 정치권의 입김이 세어질 수 밖에 없다. 지난 해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에 대한 당정협의 과정에서 여당은 ‘경기부양’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당이 공적자금 상환금을 사회간접시설과 복지예산으로 전용하려 한 것이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조속한 폐지를 주장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권오규 부총리도 취임 초기에는 경기부양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지난해 말부터 “2007년에는 재정을 조기집행 하는 방식으로 경기관리를 하겠다”고 뉘앙스를 바꿨다.
표만 의식한 인기영합주의가 판을 칠 경우 경제논리는 실종하고 경제팀은 무기력증에 빠져들면서 성장동력까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정치권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각종 반값 아파트 정책을 보면 이 같은 불길한 예감이 기우만은 아닌듯하다.
실제로 저소득층에게 일정금액의 현금을 보태주는 근로장려세제(EITC)의 경우 애초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야당이 대선의 해라는 점을 감안해 시행을 한해 늦춰 2008년부터 시행하게 됐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일정에 따라 연속성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정책이 단순히 ‘대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정치논리로 좌절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지난 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에‘독거노인 도우미 사업’과 같은 복지예산은 대폭 축소되고 각 의원들 지역구의 건설사업을 지원하는 예산은 대폭 늘어난 점도 대선을 앞두고 정부정책이 정치권에 발목이 잡힌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임기 마지막 해를 맞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세도 예사롭지 않다. 자신의 소속 정당인 열린우리당은 물론 유력 대선후보와 날 선 정치공방을 벌이는 등 부동산 버블과 가계 및 금융 위기 등 산적한 민생현안을 제쳐둔 채 정치에 몰두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앞선 두 정권처럼 대통령이 정권말기에 지도력에 더 큰 상처를 입으면 정제정책기능까지 연쇄적으로 마비되기 십상이다. 나쁜 전철을 세 번이나 반복하는 미련함은 절대 피해야 한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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