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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07/대선주자 라이프 스토리-고건

입력
2006.12.3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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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초여름 어느날. 서울 신촌 창천초등학교를 다니던 11살 소년은 장례 행렬을 따르고 있었다. 소년은 긴 행렬을 쫓다 자기도 모르게 아현동까지 따라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장례식이었다. 소년은 어느새 “김구 선생님 같은 애국자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되뇌고 있었다.

58년이 흐른 2007년. 11살 그 소년은 한국의 대표적인 행정가이자 정치인으로 대통령직에 도전하고 있다. 고건 전 국무총리다.

그는 38년 서울 청진동에서 서울대 교수, 전북대 총장, 학술원 회원까지 지낸 고형곤(2004년 작고) 박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고향이 전북 옥구여서 그의 정치적 고향은 호남이 되었다. 어린 시절 집안은 크게 부유하진 않았다. 한때 가계를 위해 집에서 양계를 했는데 소년 고건은 닭똥 치우는 당번을 하다 냄새에 질려 한동안 계란을 못 먹었다고 한다. 정치에 관심이 많던 청년 고건은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 문리대 학생회장과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엘리트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대학 1학년 때 연합문학서클 ‘미네로스’에서 이화여대 국문과 1년생이던 부인 조현숙 씨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조씨는 “매일 남편이 저를 따라 다녔는데 집 앞까지 쫓아온 남편이 저희 아버지에게 물세례를 받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신중한 그도 사랑에는 과감했던 셈이다.

그의 진가는 고시를 거쳐 공직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빛을 발했다. 내무부 새마을담당관(71년)à강원부지사(74년)à최연소 전남 도지사(75년ㆍ37세)à청와대 정무수석(79년)à교통부장관(80년)à농수산부장관(81년)à12대 국회의원(85년)à내무부장관(87년)à관선 서울시장(88년)à국무총리(97년)à민선 서울시장(98년) 등 주요 공직을 두루 섭렵했다. ‘7명의 대통령을 모신 공직자’,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당연했다. 참여정부 초대 총리(2003년) 시절에는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무난히 수행했다. 대통령 자리 빼곤 다 한 것이다.

그는 “청렴은 사명감 이전에 생존법칙”이라고 말한다. 90년 한보 수서택지분양 때 청와대의 특혜 압력을 거부해 관선 서울시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미스터 클린’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이런 청빈함은 아버지로부터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고시에 합격한 ‘청년 고건’에게 고형곤 박사는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할 3계명을 줬다. ‘줄서지 마라’‘돈 받지 마라’‘술 잘 먹는다고 소문내지 마라’는 것이었다. 고 전 총리는 늘 “세 번째 것은 몰라도 앞에 두 가지는 잘 지켜왔다”고 자부심을 가진다. 고 박사는 아들이 전남지사에 임명되자 친척들로부터 돈을 갹출해 보내면서 “판공비가 부족하면 공금에 손대지 말고 이 돈을 써라”고 했다는 일화도 남겼다.

고 전 총리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했고 안정감 있는 탁월한 행정관료의 생을 살았다. 서울시장 시절 지하철 교통망 구축, 난지도 생태공원 조성 등 눈에 띄는 업적도 적지 않다. 마지막 남은 대통령 자리를 향해 다시 한번 시작될 그의 도전이 궁금해진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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