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와 환경에 따라 독특한 어휘와 수사법, 그리고 화법을 익힌다. 유아들은 적은 습득 어휘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듬뿍 얹어 효과적으로 자기 의지를 관철시킨다.
커가면서 우리는 원만한 사회생활의 한 기법으로 감정을 최대 억제한 표현을 배운다. 감정이 앞선 표현은 호소력 있어 보이지만 지나칠 경우 일방적이며 진부할 수 있다.
● 기다림으로써 얻는 아름다움
우리가 가능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를 구사하려 노력하는 이유는 상호 공존을 전제로 상대와의 대화를 지속하기 위함이다. 격한 감정적 호소는 배수진을 친 장수처럼 비장함을 느끼게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기 쉽다.
이기적이고 비타협적인, 오로지 욕구에 가득 찬 유아의 요구처럼 오인된다면 상대는 곧 딴청을 부릴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가 듣기 좋고 아름다운 말만 되풀이한다면 그 말은 곧 빛을 잃는다.
입력되는 일련의 청각 이벤트들을 연결하여 사고해야 한다는 점에서 연설과 음악 듣기는 유사하다. 그러나 연설과 달리 음악은 기억을 위해 명확한 구조의 인상적인 선율이나 악구를 주제로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가 흥얼거리는 선율 대부분은 시작 머리의 주제들이다.
흔히 작곡을 아름다운 혹은 재미있는 주제 짓기로 생각하는데, 사실 아름다운 주제 만들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오히려 미인의 아름다움처럼 그것을 유지하고, 더욱 잘 가꾸는 것이 어렵다. 멋진 선율이 줄을 잇지만 전체적으로는 평범한 메들리처럼, 아름다움만이 존재하는 가운데서 아름다움이란 무의미하다.
아름다움의 지속은 역설적으로 그 반대를 구사함으로 얻는다. 답답하게, 재미없게, 지루하게, 불안하게 만들어 아름다움을 기다리게 함. 즉 심리적 긴장을 통해 안정을 추구하게 하고, 결국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세기 서양의 알레그로 소나타 형식은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구성, 즉 소리만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요령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선명하고 안정적이어서 기억하기 쉬운 부분과 모호함으로 다음을 기다리게 하는 부분의 적절한 안배. 이는 청중과의 심리전이다.
작곡가는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을 늘 기억해야 하며 그때그때 듣는 이의 심리도 감안해야 한다. 화자의 입장에서 청중에 대한 배려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작전 타임이기도 하다.
● 핵심은 공히 화자의 진실성과 태도
주제를 설득하기 위해 작곡가는 '같지만 다르게' '다르지만 같게'라는 관계성으로 음악의 모든 단위들을 조립한다. 음악에서의 다름은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 아닌, 유관한 상대적인 것이다.
다르더라도 같은 구석이 있음은 통일성, 같지만 다름은 다양성의 근거가 된다. 이분법의 논리가 주는 답답함에 비해 이 대조 방식은 해석의 스펙트럼이 넓어 유연하다. 시시각각 청중의 반응을 예견하는 작곡가는 다양한 템포, 음량, 전조도 적절히 시도하여 음악을 보다 흥미진진한 롤러코스터로 만든다.
장시간 어두운 음악회장 의자에 고정 자세로 앉아 경청하고, 감동에 젖어 집에 돌아가서도 또 듣고 싶은 음악. 목회자나 정치가 입장에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리만으로 상대를 집중시킨 후 끝내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말과 음악. 형식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이야기의 진실성과 더불어 자신의 말에 대한 화자의 태도일 것이다.
황성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ㆍ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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